소설은 한 남자의 삶을 한국사와 세계사적 사건에 반추시키면서 전개해 나간다. 8.15 광복, 6.25 한국전쟁, 1.21 북한 무장공비침투, 10.26 박대통령 시해사건, 12.12 쿠데타, 신군부 비상계엄, 5.18 광주 민주화운동, 1992 미국 LA폭동, 5.3 시민항쟁, 1997 IMF 경제난, 2008 모건스탠리 파산, 코로나19 전염병, 12.3 대통령 친위 쿠데타 등이 그것이다.

부조리한 역사와 부조리한 삶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소시민이 있다. 주인공 태오다. 태오는 치열하게 삶을 살고, 부조리한 사회에 열심히 적응해 간다. 철모르는 어린 시절, 대학시절의 대정부투쟁, 비상계엄을 선포한 유신정권에 항거하다가 수배자가 되고, 이념의 차이로 사랑하는 여자와 헤이지며, 힘겨운 군복무 시절을 거쳐, 불명예 제대를 한 뒤,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이 되고, 사법고시에 도전하다가 경찰에 투신한다. 그후 경찰을 나와 대학 후배와 사업을 벌이고, 가지고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한다.  

이러한 삶의 역경 속에서도 주인공은 부조리한 사회와 체제에 굴복하지 않고 삶을 이어간다. 주인공이 고된 삶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은 파랑새의 존재다. 일경에 쫓기던 조부와 6.25 때 아버지를 파랑새가 구해 준 것처럼, 주인공은 자신도 파랑새가 구원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파랑새를 찾아 산속과 동굴을 헤매고 다녀도 파랑새는 나타나지 않는다. 결국 주인공은 부조리한 사회에 모든 것을 잃고, 빼앗기고, 털린 다음 파랑새를 만난다.  

파랑새는 폐탄광에 있다. 그곳은 태오가 찾아 헤대던 ‘동굴’ 이다. 그러나 일생동안 찾아다니던 파랑새조차 부조리의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주인공은 죽어 가는 자신을 향해, 즉 부조리를 향해 권총의 총구를 겨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 주인공 자신도 부조리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되고, 부조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는 걸 인식한다. 

삶의 부조리는 결국 죽음이다. 

태초에 인간은 짐승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었고, 다시 초원으로 진출했다가, 집단을 이루어 살았다. 첨단화된 도시사회, 문명화된 세상에서 인간은 탐욕에 물들고, 절망하고, 파멸하며 부조리해진다. 그러한 부조리로부터의 탈출은 최종 안식처인 ‘죽음’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부조리를 향해 쏴라>는 주목할 만한 ‘특별한 서사’가 펼쳐진다. 일반적 소설이 현재진행,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이행되는 서사라면, 이 작품은 그 반대로 진행된다.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역행해 가며, 종국적으로 주인공이 어머니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서사의 형식을 취한다. 

‘서사의 역주행’이자 ‘부조리의 소설적 증명’이다. 

최인 작가의 소설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고,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쉽다. 그것은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세계에 대한 고찰이 소설 속에 녹아 흐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집필한 소설에 철학적 감성을 믹서해 넣고 작품을 전개시킨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사상이면서 문학적 태도이자 신앙적 자세일 수도 있다. 최인 작가에게 신앙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나의 신앙은 문학이고, 나의 신은 소설이다.”

이 한마디 말로 문학과 소설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최인 작가는 문학과 소설을 목숨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있다. 작가는 단 하나의 조사조차 함부로 표현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 그의 낱말 선택과 문장 표현은 자신의 목숨과 바꾼 것과 같다. 순간의 삶을 죽이며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으로 표현하고 내용을 끌어간다. 이 소설에서도 작가의 ‘간절함’이 녹아 흐른다. 탄탄하고 스피디한 문장, 밀도 높은 구성, 흥미진진한 스로리, 계속해서 터지는 사건과 갈등은 작가의 저력과 필력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니 놓치지 않기를.

“털리고 빼앗긴 게 나 하나뿐은 아니지.”
나는 중얼거리고 또 한번 키득키득 웃었다. 대통령도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고, 모든 것을 잃고 빼앗겼다. 대통령을 따라 쿠데타에 가담했던 경찰 고위층과 군 장성들도 모두 영어의 몸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치 않고 영구히 기름똥을 싸면서 살려고 하다가 인생을 망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p13

“아마 K시에는 여자가 있을 겁니다.”
명우는 택시에 타자마자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나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창밖만 내다보았다. 사실 명우의 짓거리를 내버려 두고 어쩌고 할 처지도 아니었다. 나도 지금 무슨 행동이든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그것이 해괴한 짓거리든, 미친 수작이든 마찬가지였다. 말없이 운전을 하던 택시기사가 슬쩍 끼어들었다.
“여자를 찾습니까?”
p18

“우리 부서에 여경이 배치된 것을 축하하며 한잔합시다.”
서두를 부드럽게 꺼낸 대공 3계장은 소주를 맥주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그 광경을 지켜본 형사들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장이 거한이라 해도 소주를 컵으로 마신다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형사들이 겁먹은 표정을 짓자 계장이 컵을 돌렸다.
“자 한 잔씩 시원하게 들이켜라구.”
p77

차지연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목조목 할 일을 일러 주었다. 우리 업무는 지부장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감시하는 것이라고. 지부장이 누구를 만나고, 점심은 어떤 사람과 먹고, 무슨 일을 하다가 퇴근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라고. 나는 차지연의 설명을 듣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출퇴근에 익숙해진 평범한 경찰관이었다. 그런 내게 상황이 수시로 변하는 일대일 감시는 난감한 업무였다.
“정말 여기서 하루 종일 죽치고 있어야 되는 거야?”
p79

“허순경님이 안 된다면… 내가 한번 시도해 보겠소.”
허순경 다음으로 나선 사람은 의협심이 강한 30대의 장순경이었다. 장순경은 바다를 헤엄쳐서 건너온 일화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 민주경찰의 근간이 되기로 마음먹고 공부를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순경시험 당일 태풍경보가 내려 여객선이 끊어졌다. 섬에서 살던 그로서는 천금 같은 기회를 날려 버릴 판이었다. 그는 가방을 머리 위에 동여매고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p121

계엄군들의 눈빛은 날카롭다 못해 살기를 머금고 있었다. 계엄군들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눈빛도 그에 못지않았다. 거리는 온통 핏발선 군인들과 저항의지로 충만한 사람들 천지였다.
p160

어떤 면에서는 총을 든 군인들과 각목을 든 시민들의 대치가 흥미로웠다. 삼촌은 거리로 나가는 내게 함부로 나서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금은 때가 때인지라 무슨 일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나도 절박하게 돌아가는 시대적 상황은 파악하고 있었다. 박대통령이 죽자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기회를 노린다는 것을.
“금명간 큰 일이 터질 것 같아.”
p160

“계엄군이 총을 쏴서 수십 명이 죽었대.”
p166

솔직히 말해 유키코와 나는 광주라는 도시에서는 이방인이었다. 우리는 항쟁을 하고 싶지 않았고, 피를 부르는 싸움에 끼어들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이 무질서한 도시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그게 나와 유키코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p185

그들은 부조리한 시대의 희생자이면서 부조리한 삶을 적극 수용한 사람들이었다. 내게 그들의 그러한 모습은 또 다른 숙제였다. 그렇게 해서 그해 5월은 내 마음속에 깊은 상처와 또렷한 기억을 남기고 지나갔다. 사람을 죽이는 한 자루의 권총과 실탄 3발을 남겨 놓은 채.
p197

“오늘밤에 최병장하고 이일병이 특수작전에 들어간다.”
변상사가 사격훈련을 하고 있는 나를 찾아와 작전지시를 내렸다. 4분대는 배하사를 분대장으로 사수인 나와 좌사수 손상병, 우사수 이일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때 우리는 하반기 검열에 대비해서 모의 사격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즉 4분대 포상에서 적기의 내습을 설정하고 화망사격 연습을 했던 것이다.
p210

그때 또 다른 누군가가 ‘쿠데타가 일어나야 부조리한 관행이 깨지는 법이다.’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작은 소리였음에도 그 말은 잠재된 의식을 흔들어 놓고 암았다. 쿠데타, 라는 말을 들은 병과 하사관들의 눈빛이 갑자기 번뜩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쿠데타’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은 공일병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출동했다가 돌아오면서 병사들의 감정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p228

나는 그때 머릿속에서 번쩍이는 백색 섬광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번쩍였고,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계속되었다. 머릿속에서 번뜩이던 섬광은 꿈속에서 보았던 검붉은 색이 아니었다. 출동했을 때, 강 건너편에서 번뜩이던 푸른색도 아니었다. 그것은 흰색이면서도 예리했고, 작으면서도 크게 번쩍였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부조리에 색깔이 있다면 바로 백색 섬광일 것이라고.
p231

근회는 학구파로 진로를 잡느냐 민주투사로 가느냐도 결론짓지 못했다. 그런 신입생에게 학생운동의 폭력성을 전수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튼 근회는 홍문회 모임과는 별도로 학생운동 배후에서 움직였다. 그런 이유로 경찰의 수배를 받거나, 당국의 견제도 받지 않았다. 근회가 음식을 차리는 여자를 보며 말했다.
“여기까지는 수사기관 손길이 미치지 않을 겁니다.”
“아니야, 이곳도 안심할 수는 없어.”
“하긴 여기도 유신헌법이 미치는 대한민국 땅이니까”
p238

학생들의 행동은 재야인사와 학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독재정권에 눌려 있던 학자, 교수, 예술가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연히 당국은 탱크를 동원해 재야인사들의 가두투쟁을 막았다. 결국 군사정권과 재야인사들은 충돌했고, 민주화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p241

나는 그 순간 한 청년의 피폐해진 삶을 보며 역사의 부조리를 떠올렸다. 그 역사의 부조리 속으로 나 역시 추락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꽁꽁 언 몸을 녹였을 때 청년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청년은 북어와 김치, 고추장 같은 안주 감을 손에 들고 있었다.
“방에 불을 넣었으니까, 조금만 지나면 따듯해질 겁니다.”
p259

청년이 나를 힐끗 쳐다보고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 같은데 여행 중입니까?”청년의 말을 근회가 재빨리 받았다.
“우리학교 선배예요. 지금은 당국에 수배되어 쫓기는 몸이고요.”
p259

역사와 시대는 언제나 오르고 개척하려는 선지자를 방해한다. 그것은 이념과 제도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근대사회를 장악해 갈 때 사회주의는 반기를 들고 역사 앞에 나타났다. 사회주의자는 자신들의 제도가 가장 우수하다며 자본주의를 비판대에 세웠다. 자본주의는 그런 사회주의의 도전과 비난을 무릅쓰고 현대를 향해 달려갔다.
p270

“모든 게 부조리야. 삶도, 투쟁도, 체제도, 이상도, 문명도…”
p278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벗어나야만 되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냉소를 사면서까지 부조리에로의 역류를 다짐하고 또 다짐했했다.
p278

“태오 선배 여기가 바로 땅끝이에요.”근회가 길게 뻗은 방파제 위를 뛰어가며 소리쳤다. 나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를 침울한 심경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내가 남쪽으로 내려온 것은 박대통령의 비상계엄과 막 탄생한 유신정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수배자인 내가, 부조리한 사회의 피해자인 내가 한가로운 여행자처럼 감상에 젖어서 돌아다니다니. 나는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자괴감으로 입맛이 썼다.
p278

“제길 이 나라에서는 마음 놓고 갈 데가 한 군데도 없구만.”
“그러니까 분단국가라는 거지.”
“분단 때문에 이러는 거 같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이게 다 군사독재정권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요. 그 덕분에 군부는 더욱 힘을 얻는 거고요.”
p282

나와 명우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도, 결론지을 수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옳은 행동은 음지로 숨어들고, 그릇된 행동은 양지를 누빈다는 것이었다. 마치 부조리한 제도와 이념이 활개를 치고, 올바른 행동과 사고가 도망다니는 것처럼.
p291

23살의 청년 최옥근은 한국전쟁이 끝나가던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옥근이 전쟁을 끝까지 치르지 못한 것은 부상 때문이었다. 즉 옥근은 적정을 살피기 위해 정찰을 나갔다가 지뢰를 밟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옥근을 살린 것은 직속상관인 대대장이었다. 대대장은 지뢰를 밟은 소대장을 발견하고 즉시 후송조치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옥근은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퇴원했다
“적진을 돌파할 때는 신속하고 과감해야 된다.”
“목숨이 걸려 있는 데도 과감해야 됩니까?”
“목숨이 걸렸으니까 과감해야 된다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삶을 보장하지 못하니까.”
p329

“옛 사람들도 말했네. 인생에 있어서 의기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말일세. 의기가 충천한 사람은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가지 않는 법이네. 그리고 의기를 가진 사람만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지.”
p365

“마지막 게임이니까, 여강에서 갖기로 하는 게 어떻겠나?”
“그럼 좋아, 내가 날을 정해서 통보해 주지.”
철재는 엄숙하게 말하고 세 명의 청년들을 둘러보았다. 철재는 게임 방식이 어떤 것인지조차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신륵사 뒤편에 나와 보면 안다는 말 뿐이었다. 며칠 후 네 명의 젊은이는 여강이 내려다보이는 동굴에 모였다. 동굴은 네 명의 젊은이가 둘러앉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게다가 동굴 바로 앞이 푸른 물이 출렁이는 여강이었다. 그들의 예상대로 철재는 터무니없는 게임을 준비해 놓았다. 그것은 수류탄을 불 속에 집어넣고 터질 때까지 견디는 시합이었다.
p371

나는 동굴 속에서 들리는 괴이한 소리를 듣고 머리를 흔들었다. 동굴이 내는 소리는 어둡고 기괴하고 무거운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부조리한 사회가 부조리한 인간에게 소리치는 고함 같았다. 나는 동굴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품속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실탄을 장전한 뒤 동굴을 향해 겨누었다. 지금 이 순간 죽어야 할 것은 부조리다. 괴물과 같은 부조리는 죽어야 마땅하다. 부조리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p382

제목 : 부조리를 향해 쏴라

지은이 : 최인

분류 : 장편소설

크기 : 150mm x 210mm

발행처 : 도서출판 글여울

발행일 : 2025년 5월 1일 

페이지 : 384p

가격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