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Amelie Nothomb
저자 소개
1967년 일본 고베
아멜리 노통브는 전통적인 벨기에 정치가 집안 출신으로 외무부 장관이었던 Charles-Ferdinand Nothomb의 조카이며 시인이자 정치가인 Pierre Nothomb의 증손녀이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버마, 라오스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브뤼셀 자유대학 라틴 철학과를 졸업했다. 노통브는 잔인함과 유머가 탁월하게 어우러진 작품으로 1990년대 프랑스 문학의 독특한 현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젊은 작가이다. 25세에 발표한 첫 소설『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천재의 탄생이라는 비평계의 찬사와 19만부 이상의 판매라는 상업적 성공을 거머쥐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프랑스 문단에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지금까지 발표된 노통브 소설의 특징적 주제는 인간의 행동양식에 내재하는 수수께끼를 간파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또 다른 특징으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는 어김없이 ‘적’이라 부를 만한 성가신 타인이 등장한다. 대개 그 ‘적’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성가신 침입자나 섬뜩할 정도로 잔인한 가학자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희생자를 모욕하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서서히 숨통을 조인다. 이 ‘적’은 내부에서 출현하기도 한다.
『적의 화장법』에서는 공항 대기실에서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문득 다가와 말을 걸더니 도무지 놓아주지 않는 성가신 인물이 있다. 자신이 범한 강간과 살인까지 털어놓는 그 인물은 알고 보니 꼼짝없이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게 된 바로 자기 자신이다.『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에서는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웃으며 지켜보는 잔인한 보모였고, 『로베르 인명사전』에서는 발레리나의 꿈을 접게 된 양딸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며 박해하는 어머니이다. 이 ‘적’의 존재와 관련하여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열두 살 때 자기 안에 “창조적임과 동시에 파괴적인 엄청난 적”이 탄생했으며, 자신에게 글쓰기란 곧 이 “적과의 결투”라고 밝힌 바 있다. 작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집요하게 그의 신경을 건드리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적’의 존재. 그녀에게는 “이 세상에서 없어서 안 될 것”이 바로 이 ‘적’인 것이다.
1999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해 유럽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킨 『두려움과 떨림』은 일본 사회의 경직성을 고발한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일본 회사의 견습 사원이 겪는 엄격한 명령 체계, 주종에 가까운 복종 관계, 비효율적인 정차와 형식 등이 풍자적인 시선으로 묘사된다. 현실을 치열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수직적이고 획일화된 사회의 중압감을 피아노 선율 같은 세밀하고 가벼운 터치로 승화시켰다.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촌철살인적인 대화감각으로 가득한 아멜리 노통브의 책들은 지금까지 전세계 31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자칭 ‘글쓰기광’인 그녀는 현제 브뤼셀과 파리를 오가며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
아버지 죽이기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로베르 인명사전(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
두려움과 떨림
사랑의 파괴
시간의 옷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
앙테크리스타
불쏘시개
머큐리
공격
배고픔의 자서전
아담도 이브도 없는
제비 일기
왕자의 특권
수상
알랭 푸르니에상
샤르돈상
보카시옹상
독일 서적상상
르네팔레상을 수상
파리 프르미에르상
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을 수상
<아버지 죽이기>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스무 번째 소설이다. 매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스무 번째 소설로 아버지를 극복하고 어른이 되려는 소년의 분투를 그린 작품을 선보인다. 소설 속에서는 특별한 재능을 지녔지만 아버지란 존재를 부여받지 못한 한 소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자들이 끊임없이 왔다 떠나는 집에서 누가 아버지인지도 모른 채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열네 살 소년 조 위프.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많지만 조는 늘 다른 아버지를 갈구한다. 어느 날 엄마는 자신의 남자를 지키기 위해 조를 집에서 내보내고, 조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사로잡은 마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최고의 마술사 노먼 테런스를 찾아간다. 노먼의 여자친구와 함께 그의 집에서 살게 된 조는 사사건건 노먼과 대립하며, 그를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 작품분석
아멜리 노통브는 매년 한 편씩의 새 소설을 내놓으면서도 매번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작가이다. 신간의 초판을 늘 10만부 이상씩 찍는 그녀의 작품은 지금까지 프랑스에서만 1천5백만 부 이상 팔렸고, 46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아멜리 노통브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20번째 소설로 아버지를 극복하고 어른이 되려는 소년의 분투를 그린『아버지 죽이기』를 내놓았다.
<아버지 죽이기>는 특출한 재능을 지녔지만 아버지란 존재를 부여받지 못한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달리 그에게 아버지는 고를 수 있는 대상이다. 그는 아버지를 선택하고 또 배척한다.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맹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격하고 뛰어넘으려 애쓰는 소년이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그의 처절한 노력은 결핍에서 비롯한 광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노통브는 아버지에게 적의를 느끼고 어머니를 사랑하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독특한 상황으로 새롭게 구성한다. 그녀가 제시하는 결말은 전형을 예상하던 독자들을 한순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정신 분석학자들은 때때로 비범한 작가의 소설 속에서 그들이 실제로 접하는 임상 사례들보다 훨씬 더 전형적인 정신 분석학적 예들을 발견한다고 한다. 〈아버지 죽이기〉혹은 〈부친 살해〉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이론에 등장하는 용어이다. 또한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나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나타나듯이 서구 문학의 무의식을 관통하는 오랜 주제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이 <문화의 시작이며 그 이후로 영원히 인간을 불안하게 하는 중대한 사건>이자 〈사회적 조직 · 도덕적 구속, 종교 등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잊을 수 없는 범죄 행위〉라고 말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심리를 가장 잘 나타내는 <부친 살해 >로부터 인류의 문화뿐 아니라 이야기의 역사도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노통브는 이러한 서구 문학의 오랜 전형을 가차 없이 뒤집어 버린다. 보통의 소년이 지닐 법한 심리를 톡톡 튀는 대화체로 박진감 있게 쫓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독자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속내를 내보인다. 아버지뻘의 어른과 살게 된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들로서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아버지의 가치관을 거부하고, 그를 무너뜨리고, 넘어서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틀린 고집으로 그 관계 자체를 거부한다. 자신의 선택과 믿음에 대한 맹신, 그것은 사춘기 소년이 지닌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된다. 노통브는 열네 살 소년의 미성숙하고 혼란한 내면을 파고들 뿐 아니라 그 모순까지 적나라하게 비추며 새로운 결말을 만들어 낸다.
「프랑스 수아르」와의 인터뷰에서 노통브는 20년간 매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온 동력을 묻는 질문에 <잠을 많이 자지 않으며 짐승처럼 일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글쓰기광이라 칭하는 그녀는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예외 없이 일어나 책상 앞으로 달려가며, 책에 대한 기대로 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1년 평균 3편 이상의 소설을 쓰고 12월이 되면 그해에 쓴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다음 해에 발표할 소설을 고른다>는 노통브는 이미 70편에 가까운 소설을 써두었다. <음악을 작곡하는 것처럼 강렬한 힘에 이끌려 글을 써 내려간다>는 그녀의 마르지 않는 창작력은 매번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하고 독특한 이야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버지 죽이기>를 발표하고 아버지가 상처받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지자 노통브는 <아버지는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해했다>고 말한다. 노통브에 따르면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무관심한 편이었던 듯하다. 자신이 힘들었던 시기에 딸의 고통을 알지 못했으며, 이후 출간된 자전적인 소설들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노통브는 <이 책은 프로이트의 전형을 소재로 삼았으며 우리는 모두 존재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며 최고의 부모도 자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관계가 자신과 부모 둘 다에게 이상적이고 자유로웠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에 계속 살아야 될지 의심이 들 만큼 어둡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는 그녀는 그 시간들을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모의 희망을 짓밟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자신의 부모는 자신이 작가가 되길 바라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학적인 동시에 재기가 넘치는 노통브의 소설들은 그녀 자신이 내면의 혼란을 극복하고 부모를 넘어설 수 있는 무기가 되어 주었다. 풍자적인 대화와 자조적인 토로, 신랄한 유머 등 그녀의 소설에 두드러지는 특징들은 힘든 시간들을 왕성한 창작으로 극복한 그녀의 삶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소설의 주인공인 열네 살 조 위프는 남자들이 끊임없이 왔다 떠나는 집에서 누가 아버지인지도 모른 채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아버지의 수는 그 누구보다 많지만 그는 늘 다른 아버지를 갈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자신의 남자를 지키기 위해 조를 집에서 내보낸다.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사로잡아 왔던 마술을 본격적으로 배우려 최고의 마술사 노먼 테런스를 찾아간다. 노먼의 여자 친구와 함께 그의 집에서 살게 된 조. 하지만 조는 사사건건 노먼과 대립하며 그를 넘어서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뜨거운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축제와 마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형성한 두 남자 사이의 미묘한 관계. 믿음과 배신을 노통브만의 신랄함으로 그려 낸 도발적인 작품이다.
노통브는 던지듯 내뱉는 대화와 평범하지 않은 상황의 연속만으로 왜곡된 가정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낸다. 그 결과 작품은 잔혹하고도 날카로운 노통브식 유머로 팽팽한 긴장 속에 이어진다. 그녀는 『아버지 죽이기』라는 아름다운 마술을 성공시켰고, 모두가 넋을 잃게 만들었다.
● 본문 중에서
조는 늘 크리스티나를 엄마와 비교하고 엄마를 원망했다. 〈나는 다른 여자는 전혀 모르니까.〉 조는 생각했다. 조에게 크리스티나는 엄마 카산드라와 정반대로 보였다. 고상하고 말이 없는 편인 크리스티나는 절대 목청을 높이는 법이 없었고, 요란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조는 뒤늦게 그녀의 아름다움을 깨달았다. 크리스티나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조는 충격을 받았다.
「그 애는 당신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래. 열다섯 살 먹은 아이가 아버지를 좋아하듯 나를 굉장히 좋아하지. 그래서 나를 죽이고 싶어 해.」
「그러는 당신은, 당신은 그 애를 아들처럼 여겨요?」
「그런 점도 있어. 나는 조에게 무척이나 감탄하고, 애정도 갖고 있어. 집을 떠나 있으면 그 애가 보고 싶어. 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면 그 애 때문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나.」
「당신, 그 애를 겁내는군요.」
「아니야. 그 애가 걱정돼서 겁이 나는 거야.」
「그렇다면 그 애는 당신 아들이에요.」
「열다섯 살 때 난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식욕 부진 상태에 가까웠죠.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산책을 하는데, 엄마가 풀밭에서 자라는 버섯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이건 소트라팽이란다.〉 나는 먹을 수 있는 거냐고 엄마에게 물었죠.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어요. 〈아니야, 이건 독성이 있어.〉 내가 곧장 그걸 먹어 보려고 하는 바람에 엄마는 하던 말을 끝맺지 못했어요. 그 후로 나는 그 버섯 생각만 했어요. 결국 그 독버섯들이 있던 곳에 몰래 가서 그것들을 먹어 치웠죠. 그러고 싶은 욕구가 맹렬하게 일었거든요. 그러고는 밤새도록 토했고, 결국 병원에 실려 갔죠.」
「자살하고 싶었던 거야?」
「그건 절대 아니에요. 엄마에게도 똑같이 말했죠. 당연한 일이지만 엄마는 내게 물었어요. 〈아무것도 먹지 않으려던 네가 독버섯은 왜 먹고 싶었니?〉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대답은 그러고 싶은 욕구가 맹렬하게 솟구쳤다는 것뿐이었어요.」
「그럼 지금은? 지금은 다르게 설명할 수 있어?」
「아뇨. 열다섯 살엔 사람이 미쳐 돌아간다는 대답밖에는요.」
<적의 화장법>이라는 이 의미심장한 제목은 어쩌면 지겨운 또 한번의 비유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뒷면의 저자 사진은 작가보다는 배우에 가까웠기에 이 빨간 표지의 강렬한 책은 읽히기도 전에 일종의 ‘적’처럼 다가올 수 있다. 백 오십여 페이지의 길지 않은 이 책은 온통 대화로 채워져 있다. 공항에서 책을 읽으려는 제롬 앙귀스트에게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인물 텍스토르 텍셀이 말을 걸어온다. 피하려 하지만 지겹게 달라붙는 텍스토르는 결국 그 강렬한 대화를 통해 제롬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는다.
냉소 가득한 이 대화를 끌어가는 기술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녀의 이 아이러니컬한 냉소는 단지 그녀의 심정적 강렬함을 포장하는 수단일 뿐, 그 안에 담겨진 이 책의 정서라는 것은 책표지만큼이나 뜨겁고 또 빨갛다
이 소설은 마치 대화로 이루어지는 언어의 결투를 보는 듯하다. 제롬 앙귀스트와 텍스토르 텍셀 사이의 불꽃 튀는 언어의 공방전. 노통브의 작중 인물 거의가 그렇듯, 여기서도 등장인물의 이름은 많은 함의를 간직하고 있다. 불안(앙구아스, angoisse)에 찌든 앙귀스트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들지만 순전한 텍스트(texte)의 구성물, 혹은 앙귀스트의 머릿속에서 짜여지는 텍스트로서의 텍스토르 텍셀의 발화행위 속에 휘말려들어 간다.
저자의 요설은 철학적 콩트의 수준으로까지 치닫는다. 범상한 통념에서부터 시니시즘이 번득이는 아이러니한 단장에 이르기까지. 아무튼 이야기 거의 대부분이 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체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무슨 영화의 장면처럼 상상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읽기보다는 대사를 듣는 것처럼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작품 역시 영화제작자들이 눈독을 들일 게 분명해 보인다.
아멜리 노통브의 근작 소설 속에는『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향기가 묻어난다. 사실 그 향기는 에드가 앤런 포의『윌리엄 윌슨』에 비교될 만큼 더욱 극단적으로 치달은 독기로 드러나며, 처음엔 둘인 듯한 사람이 결국 하나로 입증되는 분열증 이야기의 독특한 유형으로 탄생한다. 하지만 노통브의『적의 화장법』이 그런 이야기들의 단순한 리메이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녀는 프랑스 문학에서 그 독창성이 분명히 드러날 만큼의 독자적 재능과 풍자적 감각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작품분석
나는 종종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나는 오해한다. 고로 존재한다.” ‘오해’만이 각자가 쌓는 오해만이 서로를 구별 짓는다. 이해는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오해’의 상상력은 개별의 숫자만큼 다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도 ‘오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자, 미리 소심하게 전제 하나를 달까. 내가 여기서 하는 모든 얘기는 오해이다. 이해하고 통달하는 척 따위, 여기선 하지 않을 테니까.
앙귀스트 제롬은 소설의 주인공이다. 바르셀로나 행 비행기가 까닭 없이 연기되면서 그는 텍스토르 텍셀이라는 낯선 네덜란드인으로부터 괴이한 대화를 강요받는다. 둘의 대화는 시종 팽팽하다. <피가로>지의 평처럼 둘의 대화는 시합 내내 계속되는 권투 선수들의 난타전 같이 느껴진다. 텍셀은 제롬의 평범한 자아를 깨려 하고 제롬은 텍셀을 혐오한다. 책의 어느 정도까지 대부분의 독자도 그러할 것이다. 텍셀은 한도 끝도 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12살 때의 급우에 대한 살인. 고양이 밥을 먹은 이야기. 스무 살 무렵의 강간. 다시 십년이 지난 후 강간했던 그녀에 대한 살인. 그러면서도 텍셀은 그 모든 난행과 악행에 철학적인 근거들을 들이댄다. 그러니 어찌 혐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제롬은 이 미친 자의 넋두리를 듣다가 돌연 깨닫는다. 이 남자, 내 아내를 강간하고, 죽였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텍셀은 여전하다. 오히려 텍셀은 자신이 제롬의 내면의 목소리이고 내부의 적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초반에 고해까지 한 바 있다.
“아마 적이란 자신의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적이 옆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는 당신 안에, 당신의 머리와 뱃속에서 책 읽는 걸 방해하고 있을 겁니다.” 이 고해에 대한, 제롬의 반응, 그것이 그의 오해. “그렇진 않소, 선생! 나는 내부의 적 따위는 안 키웁니다.
“지금 내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적, 바로 내 밖에 있는 당신이라는 적이 있을 뿐이오. 자신을 이성과 합리의, 실무적이고 실용적인 세계의 대표쯤으로, 생각하는, 이 오해.”
제롬은 텍셀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기가 아내를 범하고 싶어 했으며, 어느날 문득 아내를 실제로 범하려다 살해했다는 것. 그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했으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텍셀에게 사랑이란 자기 안의 ‘잔인한 진정성’이며 ‘사랑’과 ‘살의’는 겹쳐진다. 제롬은 텍셀을 인정할 수 없고 텍셀 역시 마찬가지다.
<적의 화장법>을 처음 읽었던 건, 오랜 일이 아니다. 노통브는 유명했지만, 누구에게나 명성이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아닐 테니까. 지인의 독서노트에서 ‘잔인한 진정성’이라는 한 구절을 읽었고, 그래서, 그제서야 노통브를 읽었다. 지난겨울의 일이다. 사랑에 대한, 마음이 가닿으려는 그 거침없는 직진성에 대한, 하나의 주석으로 읽게 되었던 것.
노통브는 그 마음의 극단, 보통의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한계선을 보여준다.
“강간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법의 테두리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니 말이오.”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밖에는 모른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사랑을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갖춰지는 법입니다. 한데 나는 그녀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녀의 섹스, 그녀의 죽음까지도 알고 있다 이겁니다.”
누구는 이 소설에서 “나는 타자다”라는 랭보의 선언이나 “타자는 곧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통찰을 읽어낼지도 모른다. 혹은 도스토예프스키의『죄와 벌』에서 에드가 앨런 포의『윌리엄 윌슨』까지를 반추해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이 책의 수수께끼 같은 제목에 주목하라고 권하고 싶다. 저자 자신이 말한 것처럼, ‘화장법(cosm tique)’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미용(美容)이라는 의미의 장(場)을 벗어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의미의 보편적 질서, 즉 코스모스(cosmos)를 환기함과 동시에 그 다의적 차원에서 일종의 ‘가면(masque)’ 즉 위장(僞裝)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적(敵)’은 누구일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근차근 피해자의 목을 조여오는 이 가면 쓴 존재가 마침내 그 가면을 벗어 던지는 순간 독자는 “아!”하는 탄성을 금치 못할 것이다.
<살인자의 건강법>은 프랑스 문단에 ‘아멜리 노통브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그녀의 데뷔작이다. 또한 이 소설은 르네 팔레 문학상, 알랭 푸르니에 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천재의 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은 작품이다. 아멜리 노통브 특유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촌철살인적인 대화감각, 탁월한 상징의 묘미가 돋보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는 자신의 삶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는다. 비만에다 불구인 이 팔순의 노작가는 ‘엘젠바이베르플라츠증후군’이라는 특이한 병을 앓고 있다. 기형적으로 늘어난 몸과 작품으로 인해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타슈.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기자들이 몰려든다. 인간 혐오자를 자처하는 타슈는 그들 중 극소수에게만 자신과 인터뷰하는 영광을 누리게 해준다.
이 소설은 다섯 차례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는 가식과 허위에 찬 인터뷰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혐오스럽고 등골이 오싹하지만 진실의 본모습을 꿰뚫는 인터뷰이다. 대문호와의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문학과 관련된 온갖 층위의 이야기들이 진실과 허위를 오가며 펼쳐진다.
● 작품분석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는 살 날이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는다. 걸어다닐 수조차 없을 정도로 살이 찐 추물인 팔순의 노작가는 자신의 아주 특이한 병(한 세기 전 강간 및 살인죄로 감옥살이를 하던 여남은 명의 죄수들에게서 그 증세가 발견된 뒤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던 ‘엘젠바이베르플라츠증후군’)에 대단한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다. 기형적으로 늘어난 그의 몸과 작품으로 인해 의사나 독자에게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타슈. 한 마디로 연구대상인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기자들이 몰려든다.
허위에 찬 기자들의 세속적 관심에 대해 대문호 타슈는 무참한 응징을 펼친다. 타슈는 자신의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주제에 그저 죽어 가는 유명인사를 인터뷰한답시고 달려온 기자들을 잔인하기 그지없는 언변(촌철살인)으로 차례차례 죽여 버린다. 대문호 앞에서 감히 메타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무뢰배와, 작가의 식습관이나 캐려 드는 좀생원과, 진실이 어떻고 허위가 어떻고 입 아프게 쫑알대는 얼치기 문학기자들은 대문호의 광기 어린 언변 앞에 혼비백산한다.
하지만 다섯 번째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타슈의 작품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다 읽은 젊은 여기자 니나는 괴팍스럽기까지 한 대문호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을 벌인다. 특히 작가와 기자간의 불꽃 튀는 이야기의 공방은 노작가의 유일한 미완성작인『살인자의 건강법』을 앞에 놓고 더욱 거세어진다. 잔인함과 파렴치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모호함으로 점철되던 두 사람의 촌철살인적인 대화 중에 실제 살인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가 놀라운 반전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문학적 메타포나 상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쓰기광 아멜리 노통브와 함께 지옥 같은, 그러나 매혹적인 대화의 늪 속으로 빠져들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문학작품을 관통하는 허구와 진실에 대해 냉정하게 고찰하는 자신의 모습(또 하나의 살인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문학적 충격이 될 것이다.
첫 번째 소설이든 열 번째 소설이든 우리가 한 작가의 소설에서 기대하는 바는 늘 똑같지 않을까? 우리를 놀라게 할 것. 동요시킬 것. 변화시킬 것. 자신만의 문체, 자신만의 세계를 품고 있을 것. 한 마디로 문학다울 것. 아멜리 노통브의 첫 번째 소설『살인자의 건강법』은 이 모든 조건들을 두루 충족시키는 야심만만한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숨쉴 틈조차 주지 않는 생동감 넘치는 흥미를 가져다준다.
<나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이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은 작가인 자기 자신을 살해한 자에 대한 기록이다. ‘로베르’는 사전의 이름인 동시에 이 작품의 여주인공 플렉트뤼드의 예명이다. 아멜리 노통브는 등장인물들을 그녀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이상한 나라로 초대한다.
열여덟에 결혼, 열아홉에 아이를 갖게 된 뤼세트는 갑작스럽게 찾아든 ‘확신’ 때문에 남편 파비앙을 총으로 살해한다.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남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살인을 저지른 그녀는, 감옥 안에서 딸을 낳고 아이에게 ‘플렉트뤼드’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어준다.
이모의 손에 거둬진 플렉트뤼드는 이름처럼 특별난 아이로 자라난다. 평범함을 거부하고, 저 높은 곳을 향한 비상을 꿈꾸는 발레리나 소녀. 노통브 특유의 발랄하면서도 도발적인 상상력을 깔끔한 필치로 그려낸 이야기이다. 관습에 대한 야유와 어린시절에 대한 탁월한 성찰, 사람을 삶에 붙들어매는 중력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쾌한 소설이다.
● 작품분석
역설적이고도 흥미진진한 블랙유머에 기초한 ‘노통브표’ 소설은 언제나 기상천외한 충격을 준다. 거기에는 우리가 즐거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작가의 끔찍한 상상력이 있다. 2002년에 발표되어 전세계의 ‘노통브표’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충격과 즐거움을 주었던『로베르 인명사전』도 물론 그런 범주에 드는 소설이다. ‘나(노통브)를 죽인 자의 일생에 관한 책’ 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작가인 자신을 살해한 자에 대한 기록이다. 관습, 심리학적 통찰, 철학적 알레고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아멜리 노통브는 작품의 주인공들을 거울 게임으로 초대한다.
본문 속의 표현처럼 이오네스코 희곡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라고 할 수도 있는 이 소설은 카타르시스의 의미를 천착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살해당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전까지 씌어진 자신의 작품 세계를 파괴하고 절필까지 짐작케 한 이 소설은 분명 이전까지 지속된 노통브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파괴임에는 틀림없다.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아이를 임신한 뤼세트에게 평범한 건 죄악과 같았고 남편이 갖고 있던 권총만이 진부하지 않게 느껴진다. 남편이 태어날 아이에게 탕기나 조엘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것은 진부한 세상에 닫힌 시야를 주는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에게 특별한 운명을 약속하는 이름을 주고 싶어한다. 그러던 중 뱃속의 아기가 계속해서 딸꾹질은 해대자 너무나도 평범했던 남편을 그가 간직하고 있던 것 중에서 유일하게 진부하지 않았던 도구인 권총으로 살해한다. 마치 여름 태양이 너무 눈부시기 때문에 별다른 이유도 없이 권총으로 아라비아인을 사살한 뫼르소처럼 말이다.
그리고 뤼세트는 태어난 자신의 아이에게 ‘플렉트뤼드’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고 감방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다. 딸에게 지어준 이름이 유일한 유언이었다.
플렉트뤼드는 이모의 손에서 셋째아이로 자라난다.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눈빛을 지닌 플렉트뤼드는 이모인 클레망스에게 친엄마 이상의 애정을 받는다. 그러나 엄마의 애정은 소녀 시절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플렉트뤼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욕망으로 굴절되어 투사된다. 플렉트뤼드는 클레망스의 소망대로 발레리나를 꿈꾸며 정상에서 벗어난 체중과 몸매를 유지한다. 하지만 영양결핍으로 인한 칼슘 부족으로 다리뼈가 부러진 플렉트뤼드는 영원히 춤을 출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클레망스가 사랑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그녀의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발레리나가 될 수 없는 플렉트뤼드에게 마음의 상처만을 주던 클레망스는 결국 그녀에게 출생의 모든 비밀을 잔인하게 들려준다. 그때 열여섯 살 소녀였던 플렉트뤼드는 자신의 운명을 감지한다. 친엄마가 열아홉 살에 아이를 낳고 자살한 것처럼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결국 플렉트뤼드는 열아홉 살에 아이를 낳고 퐁네프 다리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학창시절 사랑했던 마티외 살라댕을 만나게 되고 강물이 아닌 사랑의 물결 속에 빠진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남자와의 완벽한 사랑 속에 성악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플렉트뤼드는 자신이 겪은 백과사전적 범주의 고통과 어울리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사전의 이름이기도 한 ‘로베르’라는 예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지금까지 발표된 노통브 소설의 특징적 주제는 인간의 행동양식에 내재하는 수수께끼를 간파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노통브는 자신의 소설적 주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는 개인의 행동양식이 수수께끼였다면『반박』에서는 보편적인 행동양식에 관한 수수께끼를 다루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작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제기되는 사안은, 끈덕지게 남을 괴롭히는 타인이라는 문제입니다. 결코 만만한 수수께끼라고는 볼 수 없지요.『적의 화장법』에서도 지금까지 다뤄온 테마가 역시 다루어지고 있지만, 단 하나 다르다면 발화적 주가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 아니라, 괴롭히는 쪽이라는 점입니다. 내 모든 작품 속에는 갈등의 시각에서 바라본 타인과의 관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늘 집단적 인간을 그리고는 그것이 잘못 돌아가는 결과를 제시하지만, 작품에 따라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요.”
『로베르 인명사전』은 지금까지 씌어진 독창적이고 풍자적 감각을 지닌 노통브의 다른 작품들과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작가 자신이 살해당하는 장면은 독자에게 읽기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괴로움을 주었던 발화자로서의 작가 자신 역시 어쩔 수 없는 하나의 타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렇기에 작품 속 인물인 플렉트뤼드가 노통브를 살해한 이유를 “아멜리가 신통찮은 작품을 쓰는 걸 막을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어.”라고 말할 때, 그녀의 남편은 그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머릿속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파비앙을 죽인 건 잘한 일이야. 그는 고약한 남자는 아니지만 너무나 평범해. 그에게 평범하지 않은 것은 권총뿐이었어. 하지만 그는 결국 그 총을 아주 진부하게 사용했을 거야. 동네 불량배들을 위협하거나 아기 장난감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아이에게 탕기나 조엘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그 애에게 진부한 세상, 이미 닫혀 있는 시야를 주는 것과 다름없어. 하지만 난 내 아기가 힘껏 무한을 품었으면 좋겠어. 내 아기가 그 어떤 제약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아이에게 특별한 운명을 약속하는 이름을 주고 싶어.”
<왕자의 특권>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멜리 노통브의 신작소설이다. 소설은 평범하던 한 남자의 삶이 다른 남자의 삶으로 바뀌게 된다는 기발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008년 프랑스에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이 작품은 탐정소설의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작가 특유의 독창적인 발상과 유머가 돋보인다.
주인공 밥티스트 보르다브의 집 거실에 낯선 사람이 찾아와 느닷없이 죽는다. 죽은 사람은 재규어를 몰며 베르사유에 살고 있는 스웨덴 사람 올라프 질더이다. 그가 자신과 신체 조건이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한 밥티스트는 그의 신원을 훔친다. 지루하던 밥티스트의 삶은 근사한 저택에서 죽은 올라프의 아내인 아름다운 지그리드와 함께 차갑게 식힌 고급 샴페인을 마시는 호화로운 삶으로 바뀐다.
소설 속에서는 평범한 한 남자가 돈 많은 부자로 거듭나 아름다운 아내가 따라주는 차가운 샴페인을 즐긴다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가벼운 코미디와 탐정소설의 분위기를 담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 할 수 있다. 작가는 밥티스트의 독백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이 없다는 걸 이해하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도 유쾌해진다며, 삶을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기괴한 소설 속 주인공들은 식사 대신 아침부터 저녁까지 최고급 샴페인을 마신다. 밥티스트는 미스터리한 스웨덴 사람 올라프의 젊은 아내와 건배에 건배를 거듭한다. 그들의 저택에는 샴페인 저장을 위해 특별 제작된 풀장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는 수천 병의 값비싼 샴페인이 보관되어 있다. 작가는 샴페인을 일종의 신경안정제, 혹은 치유제로 묘사한다.
『살인자의 건강법』이후 아멜리 노통브는 신간 소설이 쏟아져 나오는 가을 시즌을 한 해도 놓쳐본 적이 없다. 11월이면 으레 보졸레 누보를 맛볼 수 있듯이 8월 말이면 노통브의 신작을 만날 기대로 독자들의 가슴이 설렌다. 초판 25만 부로 출간된 2008년산(産) 노통브 소설 역시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노통브의 소설들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천재의 예리함이 담겨 있다. 바로 이것이 노통브라는 작가의 부인할 수 없는 독창성을 결정짓는 점이다. 전작들보다 훨씬 가볍고 상상력이 풍부한 새 작품『왕자의 특권』에서는 평범하기 짝이 없던 한 남자의 삶이 다른 남자의 삶으로 바뀌며 특별하고도 놀라운 것으로 돌변하게 된다는 기발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글쓰기광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4시에 일과를 시작하지만 “한 마리 고양이가 되는 것이 나의 환상이다”라고 고백하는 작가가 나태와 취기와 부, 독서, 낮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 늦잠꾸러기 프랑스와 현대 미술에 바치는 헌정이다.
소솔 속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우리는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한,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하다. 출구가 없다는 걸 이해하면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고 기분도 유쾌해진다. 파국이 머지않았으니 삶을 즐겨야 한다.”
노통브는 경쾌한 문장들이 전달하는 짜릿함과 꿈과 허구의 혼합이 만들어내는 폭발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왕자의 특권』은 절대적인 권력을 의미한다. 집과 은행 사이에 지하 터널을 뚫고 필요할 때마다 돈을 꺼내올 수 있는 특권. 돈으로 현대 미술의 가치를 쥐락펴락하는 특권.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도 호화로운 생활을 계속하는 사기꾼의 특권. 최근 세계적인 은행들의 행태에서 보듯이 공적 자금이 파산해도 개인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특권이다.
“지그리드와 나는 지구상에서 제일가는 강대국들의 경제논리를 개인 차원에서 재현해 보이고 있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진 빚은 우리 알 바 아니었다. 우리는 왕자의 특권, 면책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면에는 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다른 인생, 혹은 더 나은 운명을 꿈꿀 수 있는 가능성이다. 작가는 독자들을 위해 그런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자기 자신이기를 그만두는 것보다 더 굉장한 휴가가 있을까?”
아멜리 노통브와 함께라면 환상은 실제가 된다. 평범한 한 남자가 몇 초 만에 꿈에서나 볼 수 있을 미녀와 결혼한 돈 많은 부자로 거듭나 아름다운 아내가 따라주는 차가운 샴페인을 즐긴다는 내용의 이번 작품은 가벼운 코미디와 탐정소설의 분위기를 담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해도 좋겠다. 그러나 잔을 가득 채웠던 샴페인 거품은 결국 스러지고 독자들은 갈증이 덜 풀린 아쉬움을 간직한 채 책을 덮게 된다. 이야기가 몇 페이지만 더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리하여 두 주인공의 운명을 알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는 것이다.
미스터리가 해결되지 않는 결말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탐정소설에서도 끝내 미스터리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현실을 보라. 누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모른 채 죽음을 맞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이 흥미를 갖는 부분은 미스터리의 해결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처한 긴박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번 소설에서의 죽음은 비극적이지 않다.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죽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상황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내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타인의 신원을 입고 잠깐의 휴가를 보내는 상상을 해 보기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휴가를 떠날 틈도 없거니와 정작 떠난다 해도 글쓰기에 매달려 있을 뿐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작가는 자신의 문학관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악(惡)이 존재함으로 인해 문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이 자살할 이유는 없다. 문학은 악을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읽혀야 한다. 독자들이 나의 소설 속에서 찾아내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리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는 대단히 가증스러운 것들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그 가증스러움을 극복해낸다. 결국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나의 유머와 에너지가 독자들에게 뭔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는다.”
아멜리 노통브는 약간의 아이러니와 적지 않은 뻔뻔스러움과 어마어마한 재능으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이다. 그러나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매료된 나머지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고 믿게 할 수 있는 작가는 노통브밖에 없다. 이제 아멜리 노통브의 글에서는 잘 숙성된 포도주의 맛이 난다. 이번 작품은 수많은 영화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을 현실감 있는 탐정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