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 뮐러
Herta Muller
저자 소개
1953년 루마니아 바나트 지역 니츠키도로프에서 태어났다. 티미쇼아라대학에서 독일 루마니아 문학을 공부했으며 대학시절부터 목가풍의 사랑이나 자연의 신비를 노래한 시를 썼다. 졸업 후에는 77년부터 79년까지 기계공장의 번역가로 일했다. 그녀는 그때 차우세스쿠 독재정권 치하에서 비밀경찰의 끄나풀이 되어달라는 요구를 거부해 해고됐다. 해직 후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루마니아 독일계 작가들의 단체에 참여하다가 전업작가로 등단했다. 1982년 온갖 방해와 검열을 겪으면서 15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첫 연작소설 《저지대》 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아이의 시선을 통해 분석적이고 환상적인 언어로 소수계 독일 민족이 살아가는 시골마을의 숨막힘, 유년시절의 공포를 그려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루마니아 독재를 비판하는 발언을 한 뒤에는 루마니아에서 출판활동을 금지당했고, 87년 마침내 독일로 망명했다. 독일로 떠나기 위해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쓴 작품 《여권》 에서는 자신의 실제 경험에 비추어 출국허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기다림의 연속으로 고통받는 망명 대기자들의 내면 풍경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망명 후 베를린에 거주하면서 계속해서 고향 바나트 지역에 대한 그림움과 함께 소수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독재를 비판하는 작품을 썼다. 그녀는 “응축된 시정과 산문의 진솔함으로 소외계층의 풍경을 묘사했다” 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뮐러는 독일어권 문학에서 주변부를 차지하는 소수자이자 동구권에서 망명한 작가로서 적통의 독일작가는 아니지만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독일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작가이다. 그녀는 떠나온 조국 루마니아의 독재체제와 독재의 폭압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사람들, 체제를 이루려는 사람들의 경직성에 대해 여과없이 그려냄으로써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 체제 사이에 놓은 긴장의 역학 관계를 뚜렷이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저서
『저지대(1982)』
『악마는 거울 안에 있다(1991)』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1992)』
『초록 자두의 땅(1994)』
『마음짐승(1994)』
『숨그네(Atemschaukel/2009)』
수상
2009 노벨문학상
2005 베를린 문학상
2004 콘라드 아데나워 문학상
2003 요제프 브라이트바흐 상
2001 시케로 스피커상
1997 그라츠 문학상
1994 클라이스트상
1991 크라니히 슈타이너 문학상
1987 리카르다후치 다르슈타트상
1985 라우리스 문학상
1984 아스펙테 문학상
『숨그네』 는 이차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열일곱 살 독일 소년의 삶을 충격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레오폴트 아우베르크가 소련의 강제노동 수용소로 떠나던 날 들었던 마지막 말 “너는 돌아올 거야” 는 2006년 작고한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수용소로 떠나던 날 들었던 마지막 말이기도 하다. “순찰대가 나를 데리러 온 건 1945년 1월 15일 새벽 세시였다. 영하 15도, 추위는 점점 심해졌다.” 열일곱 살의 소년 레오폴트 아우베르크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장편소설 『숨그네』 는 뷔히너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자, 실제 우크라이나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오 년을 보낸 오스카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그의 체험은 독일계 소수민이었던 헤르타 뮐러의 전 세대가 공유했던 체험이기도 하다. (헤르타 뮐러의 어머니도 수용소에서 오 년을 보냈다) 헤르타 뮐러의 아버지 또한 이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다가 돌아왔다. 단지 히틀러의 동족인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던 마을 사람들은 돌아와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침묵의 무게를 더는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 뮐러는 침묵 뒤로 숨은 말들을 찾아나섰다. 2001년 헤르타 뮐러는 강제추방 당했던 마을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동료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도 추방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뮐러는 파스티오르의 경험담을 받아 적었고 두 사람은 함께 책을 쓰기로 결정했다. 2006년 10월 파스티오르가 돌연 세상을 떠나자 뮐러는 일 년여 가까이 글을 쓰지 못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8월 17일 그녀의 생일에,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소설 『숨그네』 를 발표한다.
헤르타 뮐러의 언어는 독자가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수용소의 일상을 머릿속에 섬뜩하리만치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넣는다.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다뤄지는 것은 수용소 내부의 삶이다. 예컨대 석탄을 삽으로 퍼나르는 일. 시멘트가 사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 양배추 수프에서 양배추를 찾을 수 없는 일. 끊임없이 찾아드는 배고픔에 대한 주인공의 묘사뿐이다. 그러나 주인공이 수용소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조차 똑같이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서술되고 있다. 수용소를 경험한 이후의 삶에서 달라진 것은 다만 그가 ‘러시아식으로 숨을 쉬’ 게 된 것 뿐이다. ‘숨그네’ 는 인간의 숨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네처럼 가쁘게 흔들리는 것을 상징한다.
헤르타 뮐러는 수용소에서의 공포와 불안을 강렬한 시적 언어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이 작품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조어를 사용한다. 제목인 ‘숨그네’ 도 이러한 단어 중 하나로, ‘숨’ 과 ‘그네’ 라는 말이 합쳐져 인간의 숨이 그네처럼 흔들리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작가의 단어 사용은 인간 본연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도구로 유감없이 발휘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증인” 이라는 찬사를 받는 헤르타 뮐러의 대표작 《숨그네》는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수용소의 일상을 머릿속에 섬뜩하리만치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 속에서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의 처절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이란 추상명사가 아니라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숨그네》는 줄거리가 없다. 소설 도입부에서 수용소로 끌려가는 17살의 주인공 레오 아우부르크는 수 백 페이지에 걸쳐 그곳의 ‘생활’ 에 대해 담담하게 말할 뿐이다. 소설 중반부까지 우리는 주인공의 이름조차 모른 채 이야기를 쫓아가야 한다. 작가의 철학이 응축된 어떤 ‘대단한 한 마디’ 를 기대했다면 책장을 덮는 것이 좋다. 작가는 황홀한 언어로 독자를 기만한다. ‘숨그네, 배고픈 천사, 빵의 법정, 양철키스’ 와 같은 아름다운 조어들이 안내하는 곳은 지독한 허기와 고독에 잠긴 비극적인 현실이다. 마음껏 언어의 향연에 취해 있는 사이 현실의 비참함이 가슴을 먹먹하게 울린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 처럼 극한의 고통 속에서 보는 아름다운 환각을 연상케 한다. 성냥불이 꺼지는 순간 참혹한 현실은 모습을 들어낸다. 이러한 절묘한 대위법은 수용소의 현실을 하나의 심상 안에 가두어 두지 않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소의 비정함을 고발한다.
마치 여러 편의 수필을 모아 놓은 것 같이 관조적이 서술에 의존한 각각의 이야기들은 수용소의 비참한 삶을 관통한다. 비참함은 구체적이기보다 상싱적이다. 50년도 더 된 시절의 동유럽에서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공감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구체적인 역사적 공간이기보다 비참함이 형상화된 상징적인 공간에서의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숨결을 그네 뛰게 하는 ‘숨그네’ 는 제목 그대로 독자들의 호흡을 뒤흔든다. 사물을 향해 내뱉는 참신한 비유와 같은 낯설게 하기, 처참한 상황 속에 내던져진 나약한 인간들의 실존, 무한한 서정으로 가득 찬 상처받은 주인공의 내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 책은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경지를 내보인다. 책장을 덮는 순간 깊은 꿈에서 깨어난 듯한 ‘몽롱한 각성상태’ 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p9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간다. 달리 말해, 내 모든 것이 나와 더불어 간다.
p12
나는 소리 없는 짐을 들고 다닌다. 나는 나를 너무나 싶이, 그리고 너무나 오래 침묵 안에 싸두었던 탓에 어떤 말로도 나라는 짐을 꺼내놓을 수 없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나를 단지 다른 식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했다.
p91
고양이가 쥐들과 똑같았던 점은, 찍찍 소리가 없었다는 것. 고양이가 쥐들과 달랐던 점은, 쥐들에게는 의도적이었고 연민을 느꼈다는 것이다. 고양이의 경우는 쓰다듬으려다가 물렸기 때문에 씁쓸했다. 거기에는 강요받는 경우와 같은 무엇이 있다. 누르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p156
나는 열한시쯤에 길을 나섰다. 아니, 나와 나의 배고픔이 함께 길을 나섰다. 비 때문에 아직 안개가 자욱했다. 녹슨 나사와 톱니를 가져 나온 장사꾼이, 양철그릇과 가정용 파란색 페인트 한 무더기를 가져 나온 쪼글쪼글한 노파가 진창에 서 있었다. 페인트 주변 웅덩이에 고인 물이 새파랬다.
p276
수용소를 나온 지 육십 년이 지나도 음식을 먹을 때면 너무나 흥분된다. 나는 온몸의 구멍을 모두 열어젖히고 먹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은 불편하다. 먹을 때 나는 독재자다. 입의 행복을 모르는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예의를 차리며 먹는다. 그러나 먹을 때 내 머릿속에는 여기 앉아 있는 우리처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한 방울 넘치는 행복이 스쳐간다. 머릿속의 새둥지, 숨결 속의 그네, 가슴속의 펌프, 배 속의 대기실을 내주어야 할 그 순간. 먹는 게 너무 좋아서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p277
수용소의 행복은 그의 배고픈 입으로 오늘도 내 모든 감정의 한복판을 베어 문다. 내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 바나트 지방의 독일 소수민이 모여 사는 슈바벤 마을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가정에서 자랐다. 나치가 몰락하고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는 바깥세상과는 고립된 고양 마을은 뮐러에게 “모든 것이 고여 있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다. 표제작 《저지대》 는 삼백여 년 전부터 그곳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고향 니츠키도로프의 농부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공포와 불안이 숨쉬는 공기까지 배어 있는 이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록이다.
《저지대》 는 어린 소녀를 일인칭 화자로 내세워 시골 마을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답답하고 경직된 일상을 묘사한다.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거짓과 무관심, 음주나 폭력, 가난이다. 또한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관습과 역할을 그대로 답습하며 살아간다. 마을 남자들은 들판으로 나가 침묵 속에서 일하고는 웃음소리도, 노랫소리도 없는 술집에서 고된 일에 지친 몸을 쉰다. 여자들은 한 두루마리의 옷감을 들여 슈바벤 치마를 지어 입고, 머릿속으로는 늘 도망갈 궁리를 하면서도 집안일에 매달린다. 화주를 빚거나 송아지를 도살하는 등의 금지된 일이 버젓이 자행되기도 한다. 늘 두려움에 시달리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의 자긍심이나 품위를 내던진 삶은 거칠고, 또 그만큼 공허하기 짝이 없다.
소녀의 가족도 이처럼 무겁고 불행한 공기에 짓눌려 있다. 술에 절어 지내며 툭하면 아내와 딸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아버지. 갖가지 증류의 빗자루를 마련해두고 강박적으로 집 안을 쓸고 닦으며 고달픈 삶에 못 이겨 딸의 빰에 손자국을 남기는 어머니. 주머니에 못을 한가득 넣어다니며 늘 망치를 두드려대는 할아버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리를 도살하는 할머니. 그들은 모두 침묵 속에 각자 먹는 데만 열중한다. 식탁에서는 말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물을 달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저녁식사 풍경은 메마른 가족관계와 소녀의 “목소리 없는 유년 시절” 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지대》 에서는 나중에 발표된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마음짐승」,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등의 작품들과는 달리 독재정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나 성찰은 눈에 띄지 않는다. 타국 루마니아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바나트 슈바벤 사람들의 삶을 미화하지 않고 담담히 묘사할 뿐이다. 그럼에도 기계공장의 번역사였다가 당국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당한 작가의 실제 경험을 엿볼 수 있는 「잉게」, 검열로 삭제되었던 「불치만 씨」, 「의견」, 그들만의 관습과 규칙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마을 연대기」 에서는 예리한 현실인식과 풍자적인 사회비판, 정치적인 거센 저항의 입김을 느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지대》 에서는 ‘독일 개구리’ 로 표현되는 독일적 오만함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한다. “모두들 이곳으로 멀리 떠나오면서 개구리를 한 마리씩 가져왔다. 그들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후로 자기들이 독일인이라고 자랑하면서 자기들의 개구리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들이 말하길 거부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저지대》 는 1982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크리테리온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되어 헤르타 뮐러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총 열아홉 편이 실린 원래의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는 삼십여 년의 지난한 세월을 겪어야 했다. 먼저 사회주의 치하의 루마니아 출판사에서 출간되기까지 무려 사 년을 기다려야 했다.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거쳐 네 편(「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게」, 「볼치만 씨」)이 삭제되고, 나머지 열다섯 편도 대폭적인 삭제와 수정을 거친 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1984년 독일 로트부흐 출판사에서 재출간되었을 때,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독창적인 목소리, 기이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 작품에 문단은 전율하고 열광했고 정치계의 이목까지 끌었다. 그러나 여전히 원래의 모습은 되찾지 못한 채였고 루마니아 당국은 금서 조치를 내렸다.
이처럼 뮐러는 독일 고유의 것과는 다른 방식을 절대 용인하지 않고 다른 것을 ‘마녀’ 로 규정짓고 외면하는 바나트 슈바벤 독일인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고향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래전부터 허용될 수 있던 것은 향토문학, 애국시가 전부였으며, 출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작품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헤르타 뮐러는 “자기 둥지를 더럽히는”, “수프에 침을 뱉은” 작가로 낙인찍히며, 말 그대로 사회에서 축출되고 말았다. 말을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뮐러를 향해 침을 뱉었으며, 뮐러의 가족조차 마을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헤르타 뮐러 문학의 특징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아름다운 언어이다. 그 언어는 독재정권하의 공포에서 삶을 지탱해준 힘의 원천이자, 입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97년 독일로 망명하기 전까지 수년간 비밀정보요원의 감시에 시달리며 가택수색을 당하거나 심문을 받아야 했던 불안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출구였다. 따라서 뮐러의 언어에는 언제나 불안과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으면서도 강렬한 삶의 욕구가 뿜어져 나온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뮐러의 언어는 장르의 경계 또한 무너뜨린다. 소용돌이 치는 역사와 비극적인 가족사는 그녀의 유년 시절을 무겁게 짓눌렀고, 뮐러는 그 강렬한 기억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전쟁터에서 다른 군인들과 함께 러시아 여자를 겁탈한 아버지의 이야기나 머리채를 잘라 붙애우는 어머니의 이미지 「조사」 는 독자들에게 전율을 안긴다. 뮐러 문학의 힘은 이 전율에서 나온다. 그 찬란한 시작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헤르타 뮐러의 작품을 읽는 것은 독자들에게 크나큰 행운이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탁스차이퉁)
《마음짐승》 은 독재 시절 루마니아를 돌아보는 작가의 청춘일기와도 같은 작품이다. 오래전 잘려진 언어들로 가득 찬 낱말상자를 들고 조국 같은 타국인 루마니아에서 타국 같은 조국인 서독으로 감행했던 젊은이들의 엑소더스, 그 절망의 눈부시고 뼈아픈 기록이다.
차우셰스쿠 지배하의 루마니아를 벗어나는 데 성공한 ‘나’ 와 에드가는 떠나온 고향이 담긴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지난 기억을 더듬는다. 대학 시절 한 방을 나눠 쓰던 기숙사 룸메이트 몰라가 자살한다. 체육 강사에게 성폭행당한 이야기가 기록된 폴라의 노트를 읽게 된 ‘나’ 는 몰라의 죽음을 의심한 세 남학생과 함께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세상에 눈뜨게 된다.
이 소설에는 특히 헤르타 뮐러의 개인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는 1998년 국제 일팩 더블린 문학상 수상 당시 이 소설이 독재치하에서 세상을 떠난 두 친구 롤프 보세르트와 롤란트 키르시를 위해 쓴 작품이라고 밝혔다. 롤프 보세르트는 독일로 이주한 직후 프랑크푸르트암마인의 이민자 임시숙소에서 창문을 열고 투신했고, 롤란트 키르시는 루마니아 자택에서 목을 맸다. 타살의 혐의를 풀 수 있는 부검은 허용되지 않았다. 악티온스그루페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이 두 사람은 소설에서 각각 롤라와 쿠르트라는 인물과 겹친다.
소설 속에서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젊은이들의 절망이 시적인 언어로 펼쳐진다. 제목 《마음짐승》 은 《숨그네》 와 《저지대》 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짐작할 수 있듯 작가의 조어이다.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들었던 자장가에서 착안한 이 제목은 내일을 알 수 없는 삶 속에서 불안해하는 자아의 그림자이자 상처 입고 그늘진 초상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