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릭 모디아노
Patrick Modiano
저자 소개
1945년 7월 30일
파트릭 모디아노(Patrick Modiano)는 1945년 프랑스 불로뉴 비양쿠르에서 이탈리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열여덟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해 1968년 소설『에투알 광장』으로 로제 니미에상, 페네옹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1972년 발표한 세 번째 작품『외곽도로』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거머쥐었다. 연이어 1975년에는『슬픈 빌라』로 리브레리상을 수상했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으로 대표되는 생의 근원적인 모호함을 신비로운 언어로 탐색해온 현대 프랑스 문학의 거장이다.
1978년 발표한 여섯 번째 소설『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1984년과 2000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해 각각 프랭스 피에르 드 모나코상,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수여하는 폴 모랑 문학 대상을 받았다. 모디아노는 데뷔 이후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그의 작품 중『슬픈 빌라』,『청춘시절』,『8월의 일요일들』,『잃어버린 대학』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른 주요작으로『도라 브루더』(1997),『신원 미상 여자』(1999),『작은 보석』(2001),『한밤의 사고』(2003),『혈통』(2005)이 있다.
저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혈통
작은 보석
신원미상의 여자
슬픈 빌라
한밤의 사고
수상
1978년 공쿠르상
1984년 프린스 피에르 드 모나코상
2000년 폴 모랑 문학 대상
2014년 노벨문학상
파트릭 모디아노가『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출간했을 때, 프랑스 언론은 그가 마침내 이 작품으로 자국 최고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점쳤다. 그 예상은 실제로 들어맞았고『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현대 프랑스 문학이 거두어들인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 평가받는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퇴역 탐정이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흥신소의 퇴역 탐정인 작중 화자는 조악한 단서 몇 가지에 의지해 마치 다른 인물의 뒤를 밟듯 낯선 자신의 과거를 추적한다. 그러나 탐정소설의 외형을 입고 소멸된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만이 이 소설의 전부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태어나 모든 과거를 상실한 세대로 자란 모디아노는 이 책을 통해 ‘기억 상실’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비극적 현대사의 한 단면을 그린다. 또한 나아가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인 주제의식을 명징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멸한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 악몽 속에서 잊어버린 대전(大戰)의 경험을 주제로 하여, 그는 프루스트가 말한 존재의 근원으로서 ‘잃어버린 시간’을 특유의 신비하고 몽상적인 언어로 탐색해냈다.
프랑스 문단과 독자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온 파트릭 모디아노를 대표하는『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저자 특유의 신비하고 몽상적 언어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기억의 어두운 거리를 헤매는 퇴역 탐정 ‘기 롤랑’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여행을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기 롤랑이 자신의 바스러진 과거를 추적해가는 모험을 따라가면서, 인간 존재의 소멸된 자아 찾기라는 보편적 주제 의식을 보여준다. 아울러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프랑스의 비극적 현대사를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인간의 진정한 정체성을 근본에서부터 붕괴시켜나가는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만나게 된다.
작품은 소멸된 과거의 근원적 애매성을 재구성하는 것에서 벗어나, 개인적 일생 속에 숨겨진 조그만 비밀의 무더기와 맞닥뜨리도록 인도한다. 아울러 헛되게 바스러져 망각되어가는 과거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확실하고 찬란한 현재를 사랑하는 것에 천착해보도록 이끌고 있다.
흥신소에서 탐정 일을 하다 퇴역한 ‘나’는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나’는 한 장의 귀떨어진 사진과 부고(訃告)를 단서로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등을 만나가면서 점점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기억에서 잃어버렸던 나는 낯설다. 1940년대 밀수와 가짜 증명서와 배반으로 가득한 집단에 몸담았다는 ‘페드로’가 정녕 나이며, 패션모델 일을 하다가 스위스로 잠적한 ‘드니즈’를 사랑한 적이 있는가. 만나는 사람들의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증언과 희미하게 떠오르는 기억 등으로 내 존재는 되살아나는 듯하면서도 또 다른 미궁에 빠진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기억의 어두운 거리를 헤매는 슬픈 영혼의 발걸음이다. 이는 다른 모든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삶의 흔적, 바스러지는 과거, 악몽 속에서 잊어버린 세계대전의 경험을 주제로 한 어느 기억 상실자의 이야기이다.
흥신소에서 탐정 일을 하다 퇴역한 ‘나’는 자신에 대한 일체의 기억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자신에 대한 존재 증명을 상실해버 린 ‘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벌써 나의 삶을 다 살았고 이제는 어느 토요일 저녁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떠돌고 있는 유령에 불과했다”라고 쓸쓸히 읊조린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이 아닌 다른 인물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유일한 실마리는 한 장의 귀 떨어 진 사진과 부고(訃告). 그것을 단서로 그는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등 자신과 관련된 기억을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면서 점점 자신의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그 기억 속에서 ‘나’는 한편으로는 뚜렷해지면서도 한편으로 는 더욱 불확실해지는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과 대면한다. 1940년대, 밀수와 가짜 증명서와 배반으로 가득 찬 어느 집단, 그 집단 속의 인물인 ‘페드로’는 ‘나’와 정녕 같은 인물인가? ‘나’는 과연 저 신비스러운 ‘드니즈’, 패션모델 일을 하다가 전쟁 말기에 스위스로 잠적한 ‘드니즈’를 사랑한 일이 있는가?
과연 그것은 그의 과거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사람 의 과거인가?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향기, 어느 거리에 가면 들리는 듯한 낯익은 발소리, 어느 순간 오랫동안 기다렸던 장소 같은 창문, 그리고 익숙한 느낌들…… 만나는 사람들의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증언과 잡힐 듯한 아련한 추억으로 구성되는 ‘나’의 기억. 그 허구 같은 과거 속으로 ‘나’는 조금씩 들어가 살기 시작한다. 그러는 가운데 존재의 증명은 되살아나는 듯 아니면 영구히 미궁 속으로 잠기는 듯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리고 소설은 과거의 애매성 속으로 또다시 소멸해간다.
‘나는 누구인가’, 인간 실존에 대한 본원적 질문을 집요하게 제기한 작품이다. 이처럼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점점이 흩뿌려 진 과거의 아련한 기억들을 따라 존재의 흔적을 찾아나선 ‘나’의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도정을 몽상적인 언어 속에 담고 있다. 모디아노는 이 작품을 통해 언뜻 지나치며 본 한 장면. 끊어진 한 토막의 대화. 어렴풋한 소리들을 포착해내는 예민한 감각과 간결하고 탈색된 언어로 그만의 독특한 서정적 문학 세계를 아름답게 일구어낸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기억의 어두운 거리를 헤매는 한 남자의 쓸쓸하면서도 어두운 여정을 그린 책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역시 바스러지는 과거, 잃어버린 삶의 흔적, 악몽의 어둠 속에 파묻힌 대전의 경험을 주제로 한 어떤 기억 상실자의 이야기이다.
그의 다른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주인공은 자신의 구멍 뚫린 과거를 찾아 헤맨다. 그는 사라져버린 삶, 반쯤 지워져버린 한 세계의 점점 희미해져가는 그래서 더욱 간절해지는 그 시절의 매혹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한 인간의 삶으로부터 남는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이 따뜻한 체온의 ‘나’로부터 결국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빈 과자통 속에서 노랗게 바래져가는 몇 장의 사진들. 지금은 바뀌어버린 지 오래인 전화번호들. 차례차례로 사라져가는 몇 사람의 불확실한 증언들. 그리고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그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기나 했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어질 때까지, 우리가 이 땅위에 남기는 그 자취의 보잘 것 없음. 혹은 ‘무’, 혹은 흩어지는 구름 같은 헛됨을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담담한, 그래서 더 절실한 목소리로 서술함으로써 최대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겉보기에는 이 소설은 과거를 찾아 헤매는 한 기억 상실자의 이야기다. 어떤 흥신소의 퇴역 탐정인 작중 화자는 마치 다른 인물인 것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한 추적에 나선다. 한장의 귀 떨어진 사진과 부고를 단서로 바의 피아니스트, 어떤 정원사, 사진사 등을 차례로 만나게 되고 그들의 단편적이고 불확실한 증언이 1940년대, 밀수와 가짜 증명서와 배반으로 가득 찬 어느 그룹을 환기시킨다.
그러면 그 기억 상실자인 탐정과 ‘페드로’라는 인물은 결국 같은 사람일까? 그는 과연 저 신비스러운 ‘드니즈’, 패션모델을 하다가 전쟁 말기에 스위스로 잠적한 ‘드니즈’를 사랑한 일이 있는가? 과연 그 자신의 과거인가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의 기억이 그를 한 집단과 이어주는 끈이라는 사실. 그의 기억의 모험이 그 인물 자신을 초월하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낸다는 사실이다.
그는 집요하게 계속된 인터뷰의 목록들이 구성하는 저 허구 같은 과거 속으로 조금씩 들어가 살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어떤 향기는 과거에 이미 맡아본 냄새와 같다고 기억된다. 어깨를 따끔하게 꼬집힌 듯한 느낌은 막연히 가슴을 떨며 지나온 길을 상기시킨다. 어느 거리에 가면 옛날에 들었던 발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떤 창문은 지난날 오랫동안 기다렸던 장소 같다. 첫장, 첫 구절인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와 인터뷰 하는 사람에게 꼭 물어 보는 말.
“이 사진 속에 보이는 남자는 나와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아뇨,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는데요. 그렇지만 어쩌면…..”
이 구절들을 읽으며 어쩌면 내가 상기 하지 못하는 어느 한 시절의 ‘나’인 듯한 묘한, 안개 속에 두고 온 과거인양 애달프기만 하다. 그러나 지금 나의 얼굴이 바스러지고 나면 누가 이 사진과 비교할 얼굴을 생각이나 하겠는가? 과거를 모두 기억하고 추억을 완성할 수 없다면 살아서 무엇하나. 그러나 살지 않는다면 추억해서 무엇하나? 가장 헛되이 바스러져서 망각의 무로 변하는 우리들 삶을 가장 감동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점에서 어떤 모럴을 손가락질하는 것 같다. 한일생의 기나긴 자서전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그 지속적 시간 끝에 남는 무를 고려할 때, 차라리 이 확실하고 찬란한 현재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이 책은 제시한다.
삶 속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절박해질 때가 있다. 성숙하지 못한 호감과 거기서 비롯된 나르시스적인 열정이 상처의 공장으로 변환될 때. 경계를 허물려다가 더욱 깊은 경계를 만들게 될 때. 그래서 가역반응이 허용되지 않는 관계를 자각할 때. 삶은 절박해진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시기에 우리는 뒤를 돌아본다. 돌아보는 시선 속에는 아무것도 구체적인 것은 없다.
기억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으며 다만 명징하게 다가오는 것은 몇 개의 순간들이 아니었던가. 기억을 되새길 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좌우한 몇 개의 순간들과 마주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어느 여름날 차 안에서 잠든 당신의 옆모습에 매혹되었을 때. 처음으로 아프게 인식했던 활자의 기억들. 낯선 풍경이 익숙함으로 다가올 때 느껴지던 기시감.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맑게 들리던 순간. 삶에서 잊혀지지 않는 몇 개의 풍경들 등등.
소설『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의 주인공 ‘기’는 헤매고 있다. 기억 상실증에 걸려서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는 남미 대사관의 직원이었으며, 누군가의 절친한 친구였고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기’에게는 어떤 기억도 없다. 낡은 사진 한 장을 단서로 기는 자신의 과거 속을 헤맨다. 어디선가 맡아본 듯한 향기. 낯익은 거리의 풍경, 그런데 기억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온전한 삶이라고 믿었던 것도 불투명하고 흐릿한, 언제 사라질 지 알 수 없는 그런 헛된 기억들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사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점차 자신의 과거로 알아갈수록 그는 전쟁 중 스위스로 넘어가려고 하다가 실패한 어떤 남자의 모습이 자신과 많이 닮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기억들조차도 희미하게만 느껴져서 자신이 진실로 누구였는가를 확신할 수가 없다. 가끔씩 명멸하는 것은 과거의 어떤 ‘순간’일 뿐, 퍼즐 같은 그것들은 끝내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기억의 부재를 거듭 확인하면서 기는 계속 방황한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인 로마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향해가는 ‘기’. 거기에는 자신의 온전한 과거가 있을까.
이 소설은 세계대전 이후 정체성과 가치를 상실한 채 부유하는 프랑스의 젊은 세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들은 과거에 빚진 것이 없기에, 새로운 가치를 찾아 끊임없이 방황해야 했다. 기성세대의 과거-기억에 좌우되는 자신들의 미래에 대하여 항의하는 이들의 움직임은 바로 ’68혁명’의 원동력이었다. 특정 세대를 다룬 소설이 다른 세대에게 읽힐 때, 그 소설은 ‘세대론’의 영역을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성찰로 확장된다. 소설 속의 ‘기’처럼, 어쩌면 우리도 자기 자신을 응시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기’의 행보는 인간이 과거의 틈새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은 언제나 불분명하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의 발자취를 모디아노와 함께 더듬어 가지만, 남겨진 흔적은 마치 깨진 조각처럼 단편적인 동시에 안개에 가려진 듯 모호하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도 남는 것은 맛있는 것을 먹고 난 후의 나른한 만족이 아니라, 아련한 향기가 지나간 것 같은 상실감이다. 나와 타인의 정체성을 기억하기 위해 끈질기게 알아내려 해도 결국엔 정확히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인물들.
모디아노는『혈통』에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부모님과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아무런 감정 없이 자료를 수집해가며 진술한다. 마치 조서나 이력서처럼. 그가 한 것은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스쳐 지나갔던 기억의 편린들, 머릿속 어딘가에 희미하게 떠돌고 있는 ‘묘한 시대에 살았던 묘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을 붙잡아 글 속에 가두는 작업이다.
# 1962년 크리스마스. 그해 크리스마스에 정말 눈이 왔는지 이젠 알지 못한다. 어쨌건, 내 기억 속에서는 밤에 거리와 차량들 위로 눈이 펑펑 쏟아진다. -본문 p.101
『혈통』은 시작부터 독자를 매우 긴장하게 한다.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의 많은 지명과 인명 그리고 연도까지. 모디아노는 그 단서 하나하나를 가지고 소설을 완성해나간다. 아버지가 사용했던 많은 가명들, 어머니가 일했던 극장 이름들, 그가 머물렀던 셀 수 없이 많은 호텔과 그 주소들…… 그는 40년 넘는 삶 속에서 떠돌던 기억의 조각들을 간신히 건져 올린다.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전화를 걸어 확인하거나 직접 서류를 찾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확인한 정보는 모디아노 자신에게도 단지 과거를 기억해내기 위한 작업의 한 재료일 뿐 커다란 소설적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며 또한 독자들에게도 아무 의미 없이 잊히고 말 정보일 뿐이다.
그 많은 정보들로 인해 그의 작품은 일견 리얼리즘 소설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장을 읽다 보면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진다. 서술이 정확하면 할수록 독자는 더욱 더 혼란스러워진다. 이것은 현실일까, 아니면 허구일까? 그리고 이 사건의 앞뒤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가 기억하고 조사하는 사실은 모두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것들이라, 우리는 영원히 완전한 진실을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소설은 부모의 삶을 정당화하거나 미화시키려는 데 그 의도가 있지 않다. 기억에 감정을 대입하지 않는 서술 방식은 독자를 낯설게 하지만, 그러한 기억의 나열 속에 모디아노만의 독특한 필체와 느낌이 전해진다. 그런 그의 소설은 삶이야말로 기억과 망각 속의 어딘가를 떠도는 것이라 말해주는 듯하다.
이 책의 원제인 un pedigree(혈통)의 어원은 pied de grue(학의 발)로, ‘점선’을 지칭한다. 족보에서 조상과 후손을 잇는 점선. 점선같이 이어진 학의 발자국. 하지만 점선에는 항상 선 사이의 공백이 있다. 선이 확실한 기억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 사이에 있는 공백은 어렴풋한 망각이다. 모디아노는 그 점선과 공백을 이어 나가며 하나의 도상을 완성하고자 한다.
흐릿한 플래시처럼 이어지는 기억과 망각의 연속은 독자들에게 불친절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별거하게 되었는지, 동생 루디가 어쩌다가 죽은 것인지, 간간이 나오는 여자친구들과는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귀다가 헤어진 건지 등등에 대해서 그는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 독자는 단지 그가 나열한 기억만을 가지고 상상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부분이『혈통』내에서 자서전과 픽션을 가르는 기준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혈통』에는 모디아노가 그간 발표한 다른 작품에 등장한 사건, 캐릭터, 이름, 공간들이 많이 등장한다.『혈통』이 논픽션에 가까운 자전적 글임을 감안하면, 모디아노가 자신의 실제 경험과 기억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하여 소설을 써왔음을 알 수 있다. 모디아노의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이런 사건 내지는 이름이 어느 소설에서 등장했는지 상기하며 읽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혈통』에 잠깐 언급되는 보석 ‘남십자성’에 대한 이야기는 그의 다른 소설『8월의 일요일들』에서 더 자세히 묘사된다.『혈통』에서 바칼로레아 시험을 보는 날 아침 자명종이 울리지 않아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는 미레유 우루소프라는 여자의 일화는『신원 미상 여자』에서 하찮은 사건으로 한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이야기로 다시 등장한다. 어린 시절 차에 치여 죽은 개에 대한 이야기는『한밤의 사고』에서도 나온다. 모디아노가 어머니의 명령으로 생활비와 양육비를 타러 아버지에게 가는 에피소드는『도라 브루더』에 등장한다. ‘에테르’에 의한 환각 역시 그의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또한 소설 속 인물의 이름 역시 여러 곳에서 중첩되곤 한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여자친구 중 하나였던 ‘게이 오를로프’는『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주인공의 과거와 연관이 있음직한 여자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모디아노의 삶, 모디아노의 다른 소설, 그리고『혈통』은 마치 러시아 인형처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그 많은 힌트와 기억의 단편들로 우리는 ‘진짜’ 삶을 쌓고 허물어뜨리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엉킨 실을 풀기 위한 모디아노의 지난한 노력이 담긴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작가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과 똑같은 고통을 요구할 것이되, 마찬가지로 삶의 진실 추구로의 똑같은 길 위에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지도 모른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소설로 썼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사람들과 달리, 이 사람 - 정신이상과 비행과 어쩌면 죽음까지도 문학 덕분에 피할 수 있었던 이 사람, 모든 진정한 작가들이 그렇듯 진실을 문체 속에 지니고 있는 이 사람 - 은 간결하고 정확한 조서調書를 작성하기 위해 자신의 문체까지 포기했다. 그의 조서에는 어떤 해설도 없고 심지어 정보조차 없다. (동생 루디는 1957년 열 살 때 죽었다고 했는데, 왜 죽었는가?) 여기서 알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정보는 오직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이름뿐이다. 어린 시절에 불행했고 청년기를 허비하고 말았다는 느낌은 흔히 있는 감정이다. 하지만 모디아노의 힘은 그것을 문학으로 만들기를 거부했다는 것. 설명하기를 거부했다는 것. 아버지를 이해하려 하고 어머니를 정당화하려 하고 자신의 행위를 해석하려 하기를 거부했다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왜 중요하며 획기적인 것인가 하는 이유이다. 성찰의 거부, 페이소스의 거부, 센티멘털리즘의 거부는 이 책을 낯설게 하면서 동시에 힘을 갖게 한다. 분명 이 책에는 감정이 들어가 있고 비극적 느낌은 모디아노의 초탈한 어투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문학이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황폐한 삶’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한탄과 클리셰와 반복된 수사를 냉정하게 되돌려주는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시위이다.
사실들, 날짜, 주소, 증거들을 빼곡히 나열하고 있는 이 책은 경찰 조서만큼이나 세세한 사실들로 꽉 차 있다. 서술이 정확하면 할수록 내용은 혼란스럽다는 역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문학의 기적이 아닐까. 이 책이 모디아노가 그간 쓴 소설에 대한 열쇠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이 열쇠로는 모디아노 상상력의 녹청색 문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으로 예순이 넘은 작가의 생애의 베일이 걷히지만, 작가의 미스터리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안다. 진실은 바로 문체에 있다는 것을.
모호함의 예술가 모디아노, 그는 지금껏 사실을 정확히 기술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작가였다. 하지만 모두의 기대와는 반대로, 모디아노는 이 책에서 자기 고백을 하고 있다. 희미함 대신 분명함을, 몽롱한 묘사 대신 보고서 같은 문체. 독자들은 파트릭 모디아노라는 인물이 무슨 잘못을 저질러 지역위원회에 소환되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호적에 가깝다.
(신원 미상의 여자>에서도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킨 특유의 간결하지만 깊은 여운과 적막한 슬픔이 느껴지는 몽롱한 문체는 여전하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그는 마침내 집요하게 추적하던 정체성의 문제마저 놓아버린 듯하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자에겐 이름도 성(姓)도 없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자(聽者)일 뿐이다. 마치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이름 모를 여인의 사연을 듣는 것처럼. 길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쓸쓸한 샹송의 가사를 되새기는 것처럼 말이다.
<신원 미상 여자>의 10대의 세 소녀들은 확실치 않은 현실 속에서 자기 자리를 가지지 못한 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어느날 홀연히 사라진다. 그들은 익명의 존재, 신원 미상인 채로 남게 되는 것이다. 잊혀지고자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자신을 찾지 못해 잊혀지는 것. 그동안 모디아노는 인류 역사상 인간의 실존을 가장 뒤흔들고 불안케 했던 2차 세계대전이라는 아득한 과거 속에서 조각난 기억들을 찾아 헤매곤 했다. 그러나 최근의 이 소설 속에서는 한 사람의 인생 중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가장 불안해하고 자기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10대 후반의 소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 소녀들은 각각 부모든 기숙사든 어린시절 자신들의 보호막이 되었던 곳을 떠나 자신들의 자리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냉혹하고 불안하고 안개 속처럼 바로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곳이다. 자기정체성을 규명하지 못해 불안하고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건 전쟁이나 10대의 마지막 문턱이나 그 혼란에 있어서 비슷할 것이다. 모디아노의 소설에 대한 묘사는 ‘안개 속 풍경’ 그 하나로 족하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다르지만 안개 속에서는 뚜렷이 구분할 수 없듯이, 인물 개개인보다는 그들의 자아에 대한 불안함과 막막한 현실감 등의 분위기가 소설을 가득 메운다.
흔적, 희미한 정체성, 구멍 뚫린 기억…… 『신원 미상 여자』에는 이름 없는 젊은 여자 세 명이 화자로 등장하면서 각자 그들의 상실감을 이야기한다. 첫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자는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파리 행 밤기차에 오른다. 파리에서 그녀는 실명을 알 수 없는 한 남자의 애인이 된다. 타인의 신분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는 그 남자에 대해 그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그 남자는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끌려가 사라져버린다.
둘째 이야기 속의 여자는 안시라는 도시의 수녀원 소속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느 날 저녁, 그녀는 더 이상 음울한 기숙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반대 방향의 버스에 올라탄다. 베이비시터 일을 하게 된 그녀는 자신이 돌보게 된 아이들의 아버지가 던진 함정에 빠져 예기치 못한 운명에 내던져진다.
셋째 이야기는 말 도살장이 있는 파리의 한 외곽지대에 잠시 머물게 된 젊은 여자의 이야기다. 새벽마다 들리는 말발굽 소리, 피 묻은 장화를 신고 근처 카페를 드나드는 도살꾼들… 그녀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파리의 거리를 정처없이 헤매다 ‘자아의 부름’이라는 가르침을 전하는 명상 집단에 들어가게 된다.
이 소설 역시 모디아노 특유의 절제된 어조, 투명한 어휘, 깊이 스며드는 여운이 ‘신원 미상 여자’들의 세계를 몽환적인 베일로 감싼다. 그러다가 그들은 갑자기 베일을 찢는 잔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체포, 살인, 도살… 꿈을 꾸는 사람에게도 현실은 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에겐 이 현실마저 과거일 뿐이며, 그것 역시 추억이라는 안개로 덮이고 만다.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은 아직도 ‘신원 미상’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놀랍고 훌륭한 소설『신원 미상 여자』에서 모디아노는 성(姓)도 이름도 없는 젊은 세 여자에게 말과 추억을 부여했다. 그것은 적막하고 가슴을 에는 쓸쓸한 독백이다.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
파트릭 모디아노는 이 책에서 여성의 섬세함과 저항을 풍부하게 표현하여 소설적인 시각을 더욱 깊게 하는 데 성공했다. ―르 주르날 뒤 디망슈
모디아노의 언어는 마치 날아가는 새와 같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혼미하고 안개 낀 비탈로 인도한다. 독자들은 그의 최면에 걸려 그곳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르 피가로
사라짐, 결핍, 불안정에 대한 새로운 사색.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속에는 침묵과 어둠의 특성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우리를 그에게로 끌어들인다. ―라 크루아
파트릭 모디아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형용사를 가지고 있는 흔치 않은 작가이다. ―부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