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 (2)

안네 프랭크

Anne Frank

저자 소개

안네 프랑크(Anne Frank)는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그녀는 네 살 때 나치의 유대인 학살 정책을 피해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안네는 1942년 7월 ‘은신처’에 숨어들면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게쉬타포에 의해 은신처가 발각되기 사흘 전(1944년 8월)까지 꾸준히 썼다. 가족과 함께 체포된 안네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거쳐 독일 베르겐벨젠 여자 수용소에서 티푸스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안네 프랑크는 1942. 6. 12 열세 살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6월 12일은 안네가 태어난 날이면서 <안네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날이다. 1942년 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이었다. 안네는 “생일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당신을 보았다”고 일기에 적었다. 유대인 학살이 전염병처럼 퍼지던 시절에 소녀 안네에게 일기장은 단순한 노트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비밀들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안네는 자신의 일기장을 인격화 시켜 ‘키티’라고 부르면서 마치 사람에게 편지를 쓰듯 모든 것을 털어 놓았다. 여느 소녀처럼 예쁘고, 개성이 강하고 발랄한 유대인 소녀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실하게 일기를 적음으로써 점점 성숙해 진다. 그녀는 이 일기를 통해 나치 치하를 살아냈던 유대인들의 자서전을 남긴 셈이다. 

안네가 일기를 쓰게 된 동기는 감상적인 문학소녀의 모습이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끔찍한 사고를 당해 병상에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화상을 그리면서 생의 의미를 찾았던 것처럼 그녀도 무척 외로웠다. 외로움은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감옥과 같은 은신처에서 ‘외톨이’ 안네는 일기를 쓴다. “드디어 문제의 핵심, 내가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 말 할 차례인데 그건 한 마디로 마음을 털어 놓을 만한 참다운 친구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겠어요. 열세 살 먹은 여자 아이가 스스로 이 세상에서 외톨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니 실제로 외톨이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요.”

안네는 192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난 유대계 독일인이다. 그녀는 은행가인 아버지 오토 프랑크과 어머니 메디트 사이에서 태어난 유복한 집안의 소녀였다. 1933년 나치당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대인 학살 정책이 만연하자 안네의 집안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망명을 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하는 1942년은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유대인을 색출해서 수용소로 끌고 가던 때였다. 안네의 일기는 바로 그 시기를 그려낸 유대인 소녀 작가의 작품이다.

사춘기 소녀가 마음을 털어 놓을만한 참다운 친구가 없다는 고독감을 느끼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꼭 은신처에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중고를 겪는다. 독일군을 피해 은신처에 숨고 나돌아 다니지 않으니 친구가 없다. 이 단순한 동기에서 시작된 일기 쓰기는 안네가 바라보는 시대 상황. 사랑을 포함한 내면 고백. 나치의 만행을 놀라운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너무나 성숙한 문장이어서 이 일기의 진위여부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분석결과 그녀의 일기임이 밝혀졌다. 이 놀라운 일기를 보면 훗날 작가로서 대성할 재능마저도 말살시킨 미친 전쟁의 본질도 보인다.

안네는 일기장에 “종이는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 고 적었다. 안네의 일생은 너무나 어린 나이에 끝이 났지만 그녀의 표현대로 종이는 인간보다도 더 잘 참고 견뎠다. 1942년 6월 12일부터 1944년 8월 1일까지 은신처에서 몰래 살았던 기록이, 안네가 인간보다 더 잘 참고 견딘다고 믿었던 종이에 남았다. 종이는 글을 만나 완성된다. 만년필이건 연필이건 붓이건 간에 손의 연장인 도구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종이는 기다리고 견딘다.

안네의 아버지가 마련한 네덜란드의 프린센흐라흐트 263번지 건물 창고에는 안네의 식구를 포함한 모두 8명의 유대인들(오토 프랑크 가족 4명, 일기에는 판 단이라고 나오는 판 펠스 일가 3명, 치과의사 뒤셀)이 숨소리를 죽이면서 살았다. 건물에 교묘하게 만들어진 비밀 공간에는 작은 라디오 하나와, 외부에서 도움을 주는 지인들만이 가끔 들러 생계를 도와주었다.

은신처에서 안네는 집단 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과 자신을 비유하면서 ‘천국과 같은 생활’이라고 했다. 비록 사냥개 같은 독일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기침소리조차 낼 수 없었던 공간이었지만 맑고 밝은 소녀로서 안네는 어머니와의 말다툼. 같이 사는 다른 가족들과의 반목. 오랜 감금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 사춘기 소녀의 성적인 호기심과 사랑이 움트기도 했다. 그녀의 일기에는 날이 갈수록 성숙해져 가는 안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숨어산 지 1년 반이 지나자 이렇게 쓴다.

“아마 당신도 1년 반이나 갇혀서 지낸다면 종종 견딜 수 없게 될 때가 있을 거예요. 아무리 올바른 판단력이 있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의 솔직한 느낌까지 억누를 수는 없거든요.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보고 청춘을 맛보고, 자유를 만끽하고, (…) 나는 이런 걸 동경해요. 그러나 그런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죠. 하기는 우리 여덟 사람 모두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낸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요?”

안네의 일기에 적혀 있는 나치의 만행 소식을 듣고 유대인들을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 총소와 대포소리.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 등. 전쟁에 대한 공포, 실수로 은둔처에서 발각될까 봐 조바심을 치는 모습이 있다. 저항문학으로 평가되었던 이러한 면보다는 보통 소녀로서 꿈꾸고 있는 안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에 대한 불만, 언니와의 말다툼, 성적인 호기심, 첫사랑 소년에 대한 그리움들. 2년이 넘게 숨어 사는 동안 그녀는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점점 꿈꾸는 시간이 많아진다. 소녀에게 환한 태양 아래서 마음대로 활보하는 잠깐의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1944년 7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안네는 드디어 은신처를 떠나 자유를 만끽할 희망에 부푼다. 어둠이 깊어 새벽이 오는 것이다. 그 희망의 새벽별을 바라보던 1944년 8월 4일 나치의 비밀경찰에 은신처가 발각된다. 누군가의 밀고에 의한 것이다. 안네의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오던 희망과 자유의 새벽별은 어둠과 죽음의 늪으로 떨어진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육군 장교였다. 안네의 은신처를 급습한 나치의 비밀경찰 카를 실베르바우어는 그 사실을 알고 잠시 머뭇거렸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조국을 위해 전쟁을 치른 장교마저도 수용소로 보내야 하는 현실이었다. 훗날 이 비밀경찰은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딸 안네를 비롯한 자기 가족이 은신처에서 지낸 2년은 행복했다는 말도 했다. 내가 믿으려 하지 않자 그는 은신처로 온 뒤 안네가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표시를 새겨 넣은 문설주를 가리켰다.” 안네가 있었던 곳이 비록 은신처였지만 같이 숨어산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았고, 전쟁이 어서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1944년 9월 6일 안네는 은신처의 사람들과 함께 폴란드의 작은 마을 아우슈비츠에 끌려간다. 그 다음은 영영 이별이었다. 판 펠스 씨가 제일 먼저 가스실에서 사라졌고 안네의 언니 마르고를 ‘어떻게’ 하려던 경비병에게 대들던 어머니가 두 번째로 사라졌다. 은신처에서 같이 자라면서 사랑을 느꼈던 남자친구 판 펠스 씨의 아들 페터도 사라졌다.

1945년 3월경 아우슈비츠에서 베르겐벨젠 수용소로 이송된 안네와 언니 마르고는 열악한 환경의 수용소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했다. 두 자매가 죽은 날짜는 확실하지 않지만 영국군에 의해 수용소 사람들이 구출되기 한 달이 조금 넘은 전으로 추정한다. 유일한 생존자인 안네의 아버지는 아우슈비츠에서 극도로 나빠진 건강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송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를 들어와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겪게 되었다.

독일 비밀경찰이 휩쓸고 간 은신처에 버려져 있던 안네의 일기는 이들의 은신생활을 도와주었던 미프 부인에 의해 보존될 수 있었다. 훗날 이 일기는 아버지에 의해 출판되어 전 세계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안네의 일기를 잘 보관하고 있던 미프 부인은 은신처에서도 글쓰기에 열심이었던 ‘안네’에 대해서 안네의 어머니가 자랑스럽게 한 말을 들려준다.

안네의 사망 후《안네의 일기》는 가족 중 유일하게 생존한 아버지가 발견하여, 1947년 네덜란드어(語)로 출판된 이후 각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안네 프랑크의 집’은 연 방문객의 수가 50만 명을 넘는 관광명소이다. 이곳에는《안네의 일기》를 각국어로 번역한 48권의 책과 가족 및 수용소 사진 등이 진열되어 있다. 

저서

안네의 일기

 <안네의 일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탄압 정책으로 고통받던 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실제의 생활들을 ‘키티’라는 일기장에 쓴 일기이다. 이글의 주인공 안네가 열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나치의 눈을 피해 조금한 다락방에 숨어 사는 그 불안한 생활 중에도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안네 프랑크’는 독일의 프랑크프르트의 이름 있는 유태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안네는 은행가인 어버지와 언니 마르고트 등 가족들과 부족함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네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독일의 히틀러에 의한 유태인 탄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불행한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가 유럽에 있는 유태인에게 갖가지 박해를 저질렀다. 안네의 가족은 박해를 피해 정든 고향 프랑크프르트를 떠나 이웃 나라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하여 살게 되었다.

안네는 그곳에서도 유태인이란 것 때문에 몬테소리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유태인들만 다니는 학교에 다니게 되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안네와 같은 유태인을 못살게 구는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자 유태인들은 정들었던 마을, 이웃과 헤어져 다른 나라로 피했다. 이때 안네의 가족은 감옥 같은 곳으로 숨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숨지 않고 독일의 비밀경찰에게 잡히면 ‘아우슈비츠’ 등 수용소에 끌려가 견딜 수 없는 중노동과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다.

‘키티, 바깥 세상은 너무도 무서워. 불쌍한 유태인들이 밤낮 없이 끌려가고 있어. 그들은 끌려가면서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겨. 그리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따로 데어 놓아, 가족이 산산이 흩어지게 되고 말아’ 라는 일기를 쓸 때의 안네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마도 안네는 유태인을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나도 잡히면 맞거나 죽임을 당한다는 불안으로 하루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안네의 훌륭한 점은 그 같은 불안한 처지에서도 자신의 생활,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느낌을 꾸준히 기록했다는 것이다. 숨어서 사는 안네의 마음을 읽어 볼 수 있는 일기를 한 가지 읽어보면. ‘1943년 10월 29일 키티, 나는 가끔 견딜 수 없는 우울에 빠져. 특히 일요일에는 더 해. 주위의 분위기가 숨막힐 듯이 답답해. 납같이 무겁고 괴로워. 밖에서는 새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아. 죽음 같은 고요함이 어디나 다 뒤엎어, 나는 깊은 땅 속으로 끄려 들어가는 것만 같아. 나는 날개가 부러져 캄캄한 밤에 혼자 둥우리를 지키며 노래를 부르는 새 같은 심정이야. 어떤 때는 이 방 저 방을 헤매기도 해. 그리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해 보기도 해.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쓸쓸함과 공포감을 떨쳐 버리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리도록, 나는 긴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잠을 자 버려. 이것밖에 달리 시간을 보낼 방법이 없어’란 일기에서 안네는 친구들과 명랑하고 활발하게 뛰놀며, 산과 들에서 나무, 풀과 친해보고자 하는 희망이 전혀 실현될 수 없었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러나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로 끝이 났다. 마지막 일기를 쓴 3일 뒤인 8월 4일 독일의 비밀경찰에게 숨어 살던 곳이 발각되어 같이 숨어서 생활하던 사람들과 함께 잡혀간 것이다. 그 후 안네에게는 불행한 일이 계속되어졌다. 안네의 어머니는 독일 병사가 언니인 마르고트를 놀리는 것을 말리다가 얻어맞고 어디론지 끌려가 버렸다. 안네와 마르고트는 1944년 10월 30일 독일 베르겐 베르젠 수용소로 옮겨졌다. 안네와 마르고트는 티푸스에 걸려 격리 수용되었다가, 언니가 쇠약해져 침대에서 떨어져 죽었다. 언니의 죽음과 주변의 공포에 시달리던 어린 안네는 온 몸의 힘을 잃고 3월초 1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안네의 일기’는 독일 비밀경찰이 안네가 숨어 살던 곳의 물건 등을 옮겨 갈 때, 청소부가 흩어진 신문지들 사이에서 몇 권의 노트를 주웠는데 그 것이 바로 ‘안네의 일기’였다. ‘안네의 일기’는 그 후 몇 사람의 손을 거쳐 1947년 6월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출판된 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번역, 출판되어 읽히게 되었다.

  <안네의 일기>는 안네의 아버지인 프랑크 씨가 1947년에 출판했다고 한다. 안네의 일기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의 유대인의 생활을 모두 보여주는 것 같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정책에 의한 유대인들의 수난. 우리는 그 역사를 바탕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차별을 피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유대인 안네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몇몇 조력자들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라도 그들의 은신처가 발각되면 수용소로 끌려가야만 하는 살얼음과도 같은 하루하루. 밖에 나가는 것은 고사하고 창문 너머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것 마저 통제 받고 조심해야 했던 2년. 수시로 접하게 되는 유대민족에 대한 탄압과 수용소 소식. 매일같이 들려오는 비행기와 폭격소리와 고사포소리, 총소리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세벌의 옷과 몇 권의 책 일기장. 피죽 같은 빈약한 식량. 감옥과도 같은 좁은 은신처 내부로 국한된 생활공간이 전부였다. 

「나는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려 암스테르담의 넓은 시가를 내려다보았어. 줄곧 머리를 잇대고 늘어서 있는 지붕들이 멀리서 푸른 하늘과 한 덩어리가 되어서 그 끝을 구분할 수가 없었어. ‘이 찬란한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존재하고, 우리가 살아서 이것을 바라볼 수 있는 한 우리는 불행 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어. 무서워하고 쓸쓸해하고, 불행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치료 방법은 어느 곳이든 하늘과 자연과 신하고만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이 자연의 소박한 아름다움 속에서 인간의 행복을 지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야. 자연이 존재하는 한 – 그것은 항상 존재하는 법이지만 – 어떠한 환경 속에서 있더라도 모든 슬픔에 대해선 언제나 위안이 따르게 마련이야.」

「나는 불행이란 것은 생각지 않아. 아직 남아 있는 아름다움만을 생각하지. 엄마는 우울할 때면 ‘세상의 모든 불행을 생각하고 자기가 아직 그런 불행 속에 던져지지 않았다는 것을 감사하라’고 충고하셔. 그러나 나는 달라 ‘밖으로 나가서 들판을 걸으세요. 자연과 햇빛을 듬뿍 들이켜고 당신 자신과 하나님 가운데서 다시 행복을 찾으세요.’ 나는 엄마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지 않아. 만약 그렇다면 자기가 불행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만 할 것 아니겠니?(불행이라는 사실은 일단 인정하게 되는 것 아니겠니?) 그러면 그건 불행을 스스로 부르는 것이지. 반대로 자연이나 햇빛이나 자유나 인간 자신 속에서 항상 아름다움이 간직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믿는다면 인간은 자신과 신을 깨닫게 되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용기와 신념을 지닌 사람은 결코 불행 속에서 죽지 않아.」

「우리는 여기서 많은 것을 잃고 있다. ……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세계의 질서를 의미한다. …. 나는 우리가 지금의 고난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늘 아침 창 앞에 서 있을 때 문득 그것을 깨달았다. 충일한 내면적인 보상을 -밖을 내려다보고 자연과 신의 참뜻을 엿보았을 때 나는 행복했다. 진정 행복했다. 그리고 내겐 패터가 있다. 여기서 이런 행복을 지니고, 또 자연에 대한 기쁨이나 건강에 의한 즐거움을 가지고 있는 한 언제나 행복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다. 재물은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행복은 비록 배일에 싸여 있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어느 때든지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두려움 없이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고 마음이 순결하다고 지각하는 한 행복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안네는 그녀 스스로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꼬마 모순 덩어리'(안네 자신), 이것은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겠니? 다른 단어들과 같이 이것은 외부적인 모순과 내면적인 모순의 두 가지 의미가 있어. 전자는 ‘고집이 세고, 아는 체하고, 건장지다’는 것이야. 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사려 깊고 자상한 안네가 있어.」

도피 생활 전이나 은신처에서의 도피생활 간이나 그녀는 변함이 없다. 조금씩 철이 들어 가는 소녀일 뿐…

행복은 어느 순간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어느 목표까지 다다랐을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이런 생각으로 정진하는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목표로 늘 행복을 쫓아가는 형국이 된다. 그저 지금 당장 스스로 행복하기로 결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만족의 문제이다.

「내가 지금 살아 있고 내가 다니는 길에 비친 햇살과 나무와 바람과 비가 있어 나는 매일 하나님께 위로와 지원을 받고 있으며 내게 네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