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상 ,하권)

최인 장편소설

윤근수가 형틀에 묶여 있는 나를 향해 부르짖었다.

“이래도 할 말이 없느냐?”

나는 머리를 꼿꼿이 들고 말했다. 

“죽인다 해도 거짓을 아뢸 순 없소.”

“신 이순신 삼가 장계를 올립니다. 임진년부터 지금까지 적이 감히 전라도를 지나 충청도로 올라가지 못한 것은 수군이 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수군을 버린다면 적은 충청도를 거쳐 곧바로 한강에 이를 것입니다. 그것이 신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빌건대,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이들을 이끌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전선의 숫자는 적지만, 신이 살아 있는 이상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는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몇 명의 상상적 인물을 첨가해 사랑과 갈등과 사건을 보강한 역사소설이다. 딱딱한 역사적 사실을 대화와 시를 통해 세련되면서도 감성적으로 풀어냈다. 74편의 한시(漢詩)가 인용되어 있으며, 이 중 36편은 저자가 직접 지었다. 이 한편의 소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조망한다. 

임진년(1592)부터 시작해 무술년(1598)으로 끝나는 스토리 속 선조와 이순신의 갈등, 원균·윤두수·윤근수와의 대립, 정탁, 이원익 등과의 신의적 교류,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 지위를 박탈당한 채 도성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는 정유년(1597) 2월 26일부터 동년 4월 1일까지의 기록도 볼 수 있다. 

전쟁으로 신음하는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 왜적에 붙은 항왜들의 발악, 예화와 이순신의 사랑, 이순신 장군과 같이 전투를 벌인 장수와 군관들의 개인적 삶까지. 

서정적이면서도 동적이고, 격렬하면서도 냉정하다. 사랑과 감성이 충만하다. 흥미진진하고, 벅차오른다. 정사(正史)라고 해도 믿어지는 섬세하고 사실적인 기록을 드디어 만난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조선, 중국, 일본 3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을 영접할 시간이다.

저자 최인은 상, 하권으로 나누어진 이 소설 속에 임진왜란, 정유재란, 난중일기 전 과정을 짜임새 있고 스피디하게 써 넣었다.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는 난중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작가는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적 기록을 재미있으면서 흥미롭게 소설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소설은 이순신 장군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그 과정은 난중일기를 쫓아가는 형식이다. 그러나 난중일기에 없는 부분을 대폭 가미해 소설적 재미를 배가시킨 것이 돋보인다. 또한 소설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순신이 되어 가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즉 저자 특유의 간결하고 몰입도 높은 문장과 묘사, 갈등, 전개가 독자의 마음을 절묘하게 감정이입시킨다, 

정사(正史)나 야사(野史)에는 이순신 장군이 한 여인을 사랑하고, 사랑 때문에 갈등하고, 사랑 때문에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작가는 이 작픔 속에, 이순신이 장수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고, 한 여자를 열렬히 사랑한 남자라는 사실을 한시를 통해 녹여 낸다. 

이순신을 사랑한 여자는 답시를 읊어 연정을 표현한다.

위와 같이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는 전쟁 소설이기 이전에 사람을 사랑한 사랑 소설이다. 즉 이순신에게 사랑의 감정과 사랑의 갈등,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슾픔을 절절히 느끼게 만든다. 

특히 이 소설에는 난중일기에서 빠진 부분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즉 이순신 장군이 통제사 지위를 박탈당한 채 도성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나는 정유년(1597) 2월 26일부터 동년 4월 1일까지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록은 대동야승, 난중잡록 등 야사를 통해 써 넣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쓴 이 공백기간의 기록은 너무나 섬세하고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정사처럼 보인다. 

또 한 가지 특별한 것은, 작가가 직접 지어서 요소요소에 삽입한 36편의 한시(漢詩)이다. 이 한시들은 글 속에 녹아 흐르면서 소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작품의 격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 이 한시들은 이순신의 고독한 마음을 표현한 것도 있고, 이순신이 사랑한 여인이 애정시로 쓴 것도 있으며, 장수들이 자신의 울적한 심회를 읊은 것도 있다.  

저자는 소설 속에 재미와 흥미를 불어 넣어 중고생, 대학생, 일반인 등 모든 계층의 독자들이 역사를 배우고 되돌아보면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어떤 부분은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따르면서 대화, 기록, 전투장면을 자세히 기술했고, 어떤 부분은 역사학자도 눈을 크게 뜨고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도록 교지, 통문, 공문, 서장, 통첩, 상소문 등을 상세히 썼다. 즉 이 책은 역사적 교훈과 소설적 재미와 전투적 흥미가 충만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 이순신 장군의 생애와 성품, 치밀함, 과단성은 물론이고, 장군을 도와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끈 휘하 장수들의 성장과정, 그들의 전투와 전공과 벼슬, 등과과정과 성정, 장렬한 죽음 등을 알 수 있다. 또한 원균과의 끊임없는 갈등, 선조와의 간헐적 충돌, 정적 윤두수, 윤근수와의 암투, 장군을 도운 유성룡, 정탁, 이원익의 등과의 신의적 교류 등을 볼 수 있다. 그 외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뛰어난 활약상과,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백성들의 참상을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이순신은 전쟁터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차갑고 과감하지만, 하급관리와 병졸, 노비 같은 약자들에게는 어버이 같은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도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관청 노비와 집안 노비 등의 모습과 행동을 정겹게 그려, 그들에 대한 애정과 따듯한 마음을 적극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본주의에 몰입된 채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인 우리에게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닭이 세 번 울 때 일어나 세안을 했다. 곧 조복을 갖춰 입은 뒤 객사 동헌으로 나갔다. 날이 어두웠으므로 촛불을 밝히고 망궐례를 드렸다. 전라좌수영 주요 장수들과 군관, 영리들이 망궐례에 참석했다. 망궐례 후 관사로 돌아와 좌정하고 앉았다. 도지가 상산자석연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상 p13)

 오전에 방답첨사(종3품)로 제수된 입부 이순신이 도임장을 들고 왔다. 새 첨사 이순신에게 모과차를 대접했다. 이순신이 모과차를 내온 예화를 보고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굽니까?”

나는 모과차를 한 잔 마시고 대답했다.

“조산보만호 시절에 구해 준 아이입니다”

(상 p14)

 석수 박몽세가 선생원 채석장에 가서 해를 끼쳤다. 박몽세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웃집 개까지 잡아먹었다. 박몽세를 잡아다 동헌 마당에 엎어놓고 곤장 80대를 쳤다. 엉덩이와 허벅지 살이 찢어졌으나 봐 주지 않았다. 말단 역부의 군기를 잡지 않고는 군율을 세울 수 없었다.

(상 p15)

 나는 배석한 장수들에게 나직한 어조로 말했다.

“한 달 안에 부족한 것을 모두 보충토록 하시오.

 능성현감 황숙도가 죽는 소리를 냈다.

“한 달은 짧으니 두 달을 주십시오.”

 나는 선내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왜적이 바다를 건넌다면 따듯한 사월일 것이오.”

(상 p24)

 저녁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해 일찌감치 관사로 들었다. 숙소에서 병법서를 보는데 배가 더부룩하더니 통증이 일었다. 한식경을 기다려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이 심해졌다. 나는 참다 못해 도지를 불러 처방을 지시했다.

“예화에게 탕약을 달여 오게 하라.”

(상 p32)

 귀선의 길이는 총 32.4미터이고, 폭이 10.3미터이며, 높이가 6.4미터였다. 탑승인원은 선장 1인, 군관 3인, 포수 40인, 궁수 30인, 격군 90인 등 총 163 명이었다. 급할 때는 궁수와 격군까지 포를 쏘도록 만든 게 귀선이었다. 나는 종일 귀선의 여러 가지 기능을 시험하고 돌아왔다. 저녁때 밥을 일찍 먹고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상 p35)

 공무를 마치고 관사로 들어가는데, 경상우수사 원균에게서 긴급통첩이 날아왔다. 

“왜선 90척이 부산 앞 절영도에 들어와 정박했다.”

 곧 이어 경상좌수사 박홍으로부터 급한 공문이 들어왔다.

“왜선 350여 척이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해 진을 펼쳤다.” 

 즉시 이 사실을 적어 전라순찰사 이광, 전라병마사 최원,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보냈다. 왜적이 드디어 조선공략에 나섰다. 왜선 숫자와 장소를 보아도 그건 분명했다. 밤에 경상관찰사 김수의 공문이 날아들었다. 

“부산첨사 정발이 이끄는 육군이 패해 부산성이 함락직전이다.”

(상 p42)

 송상현이 죽음을 당할 때 관노(관청노비)와 급창(원의 말을 전달하는 종)이 울며 달려왔다. 그들은 송상현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함께 죽었다. 포위를 당하기 전 송상현이 북쪽을 향해 재배하고 부채에 썼다. 

“孤城月暈   외로운 성에 달무리 서매

  大鎭不救   크디큰 진영을 구해 내지 못하누나.

  君臣義重   군신의 의리는 무겁고, 

  父子恩輕.  부자의 은혜는 가볍다.”

(상 p45)

 조반을 먹고 일어서는데 예화가 갑옷을 들고 왔다. 나는 예화가 가져온 두석린갑(놋쇠미늘갑)을 단정히 갖춰 입었다. 예화가 허리띠와 어깨끈이 잘 매어졌는지 돌아가며 살폈다. 붉은색 갑옷을 입자 전쟁이 일어났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갑주 입는 것을 도운 예화가 허리를 숙였다.

“몸을 잘 보존하셔야 나라를 지킬 수 있습니다.”

 나는 어른스럽게 말하는 예화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상 p57)

 좌부승지의 서장을 읽어 본 순천부사 권준이 머리를 흔들었다. 

“수군을 끌고 부산으로 가는 것은 불가합니다.”

 방답첨사 이순신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광양현감 어영담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산으로 가는 것은 곧 목숨을 버리는 일입니다.”

 낙안군수 신호에 의하면, 적이 운행하는 안택선 수는 500척 이상이었다. 이를 30여 척의 전선으로 공격하는 건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나는 마음을 다져 먹고 결연한 어조로 군령을 내렸다. 

“좌수영 전 함대는 오월 초하루까지 여수 앞바다에 집결하시오.”

(상 p60)

 나는 원균의 공문을 받은 즉시 전라좌수영 진영을 짰다. 중위장에 방답첨사 이순신, 좌부장에 낙안군수 신호, 전부장에 흥양현감 배흥립, 중부장에 광양현감 어영담, 참모장에 조방장 정걸로 정했다. 또한 유군장에 발포가장 나대용, 귀선 좌돌격장에 영군관 이기남, 귀선 우돌격장에 영군관 이언량을 명했다. 

(상 p63)

 대신 유홍이 엎드려 울면서 아뢰었다.

“전하 종묘사직과 신민들이 도성에 있는데 어디로 가십니까. 가벼이 움직여서 백성들을 놀라게 하셔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대신들은 몽진을 아뢰었다. 

“평양으로 조정을 옮기고, 명나라에 원병을 청해 회복을 도모하소서.”

 장령(정4품) 권협이 어전에 머리를 박으며 막았다.

“상감마마, 못 가십니다. 종묘사직이 있는 한양을 끝까지 사수하셔야 합니다.”

 이때 권협의 머리에서 피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좌의정 유성룡이 나서서 피신할 것을 아뢰었다.

“권협의 말은 충정이지만, 사세가 그렇지 못합니다.”

(상 p70)

 아침에 선창으로 내려가 거북선과 판옥선을 둘러보았다. 함선들은 언제라도 출전할 수 있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오전 중 경상우수사 원균으로부터 전서구가 날아왔다. 전서구가 가져온 편지는 함선이 다 파괴되어 남은 게 3척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점심때 경상순찰사 김수에게서도 짧은 공문이 왔다. 경상도 장수들이 모두 고을을 버리고 도주했다는 글이었다.

(상 p73)

밤에 탄환을 맞은 곳이 욱신거리고 쑤셨다. 도지를 시켜 심약 신경황을 지휘선으로 불렀다. 신경황이 상처를 살핀 뒤 허리를 굽혔다.

“철탄을 그대로 놔두면 살이 썩게 됩니다.”

 나는 총탄 부위를 만지며 물었다.

“철탄을 꼭 빼내야 하는가?”

 신경황이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대로 놔두면 절대로 안 됩니다.”

 나는 지체없이 명을 내렸다. 

“지금 즉시 철탄을 제거하라.”

(상 p93)

 조헌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충청도 옥천에 후율정사를 짓고 제자를 길렀다. 그뒤 지부상소(도끼를 지니고 하는 상소)로 시폐(정치적폐단)를 극론하다가 길주에 유배되었다. 조헌은 낮에 농사짓고 밤에는 글을 읽다가 도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일어섰다. 이때 공주에서 깃발을 들었는데, 모집에 응한 자가 1000명이었다. 조헌은 손수 격문을 작성해서 삼도에 돌렸다. 

“조선 백성 중 머리를 가진 자는 지혜를 내놓고, 재산을 가진 자는 군량을 내놓고, 군사를 가진 자는 병력을 내놓고, 우마를 가진 자는 병참에 참여하고, 힘을 가진 자는 모두 대열에 끼라.”

(상 p108)

 나는 장수들에게 적함 70척이 견내량에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장수들은 대규모 선단이 모여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중부장 어영담이 먼저 말을 꺼냈다.

“견내량은 수심이 얕고 물살이 빨라 규모가 큰 판옥선에게는 불리합니다.”

 귀선 좌돌격장 이기남도 거들고 나섰다.

“암초가 많은 견내량은 판옥선이나 거북선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곳입니다.”

 나는 그 대책을 모여 있는 장수들에게 물었다. 신중히 지켜보던 중위장 이순신이 의견을 냈다.

“적을 수심이 깊은 한산도 쪽으로 유인해 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좌부장 신호가 재빨리 동조했다.

“왜함은 회전이 느리고 진퇴가 용이치 않아 한군데 몰아 놓고 포를 쏘아 부수면 됩니다.” 

 나는 무릎을 탁 치고 말했다.

“한산도에서 학익진으로 치면 어떻겠소?”

 장수들은 모두 학익진이면 적을 섬멸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상 p110)

 조정에서는 지속적으로 명나라와 교섭하며 지원군을 요청했다. 마침내 요동군의 부총병 조승훈이 병력 3000여 명을 이끌고 평양으로 떠났다. 7월 17일 조명연합군 6000여 명이 평양성을 공격했다. 이때 평양성 안에는 왜군 2만 여 명이 웅거해 있었다. 아침부터 큰 비가 내렸음에도 명군은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상 p122)

 아침 일찍 일어나 시경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경전에 실린 시편들은 하나같이 아름답고 감정이 풍요로웠다. 시경을 읽을 때 예화가 모과차를 끓여 왔다. 나는 따듯한 모과차를 다 마시고 나서 물었다.

“너도 시를 좋아하느냐.”

 예화가 읍하고 서서 대답했다.

“즐겨 읊는 시가 그곳에 몇 수 있습니다.”

 나는 시경을 건네주었다.

“어느 시가 네 마음을 사로잡았느냐?”

 예화가 시경 중 당풍편을 펴고 주무(綢繆)라는 시를 가리켰다.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예화가 낭랑한 목소리로 읊었다. 

綢繆束薪   얽어 묶은 땔나무 다발

三星在天   삼성은 하늘에 떴고

今夕何夕   오늘 저녁은 어떤 저녁일까요. 

見此良人   이 사람 만났지요,

子兮子兮   그대여, 그대여

如此良人何  이처럼 좋은 분이 어디 있을까요.

(상 p151)

 도지가 간단히 몸을 푼 다음 진전격적세부터 초식을 시작했다. 그 다음으로 날짐승이 한 발로 섰다가 날아가는 금계독립세를 펼쳤다. 이 초식은 상대의 허점을 노려 공격할 때 더 위력적이었다. 또한 이 자세는 실전에서 적의 급소를 지를 때 쓰는 초식이었다. 

 내가 검법을 펼치자 도지도 기합을 주며 초식을 펼쳤다. 도지는 마당 가운데서 우측으로 향하고 나는 좌측으로 전진해 나갔다. 나는 상대의 머리를 정면으로 치는 후일격세를 취했다. 이어 호랑이가 숨어 있다가 뛰어 나오는 맹호은림세로 넘어갔다. 

 그 다음 시선을 정면에 두고, 직선으로 찌르는 안자세를 썼다. 몇 수의 초식을 펼치자 등과 이마에서 땀이 솟아났다. 나는 신속하게 찌르는 직부송서세를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는 발초심사세를 펼쳤다. 

(상 p158)

 점심 후 어영담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백성들 참상이 눈 뜨고 못 볼 지경입니다.”

 배흥립도 인상을 찌푸렸다.

“백성들이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물었다.

“백성들이 그렇게 어려운 지경에 빠졌소?”

 어영담에 의하면, 백성들이 전란을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백성들이 처음에는 산속에서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먹으며 살았다. 나무껍질과 풀뿌리가 바닥나자 민가를 털어 목숨을 지켰다. 도둑질 못하는 백성은 길바닥으로 나가서 거렁뱅이질을 했다. 거렁뱅이질로도 살기가 어렵자 아예 산적으로 나섰다. 산적으로 나선 백성들이 관아를 습격해 곡물창고를 털었다. 창고를 털다가 토적이 되어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음식을 얻기 위해 왜군이 되어 조선군과 싸운다는 것이다.

(상 p163)

 십이월 초하루였으므로 망궐례를 올렸다. 조반을 먹고 동헌으로 나가 공무를 보았다. 오전에 우후 이몽구를 불러 물었다.

“군량이 어느 정도 비축되어 있소?”

 이몽구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내년 봄까지는 그럭저럭 견딜 만합니다.”

 나는 예비군량 중 일부를 인근 백성들에게 나눠 주라고 지시했다. 내 말을 들은 이몽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몽구를 쳐다보며 잘라 말했다.

“백성이 없으면 나라도 임금도 없소.”

(상 p164)

 날이 어두울 때 일어나 정성껏 세안을 했다. 조복(등조예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객사 동헌으로 나갔다. 황촉을 켠 뒤 전패를 객사 정청(객사 중심)에 설치했다. 그 다음 향탁을 놓고 의장을 뜰 동쪽과 서쪽에 배열했다. 전라좌수영 주요 장수들과 함께 전패 앞에 좌우로 나누어 섰다. 

 집사를 보는 정사립이‘국궁 사배.’하고 외쳤다. 조복을 갖춰 입은 장수들이‘배 – 흥 – 배 – 흥 – 배 – 흥 – 배 – 흥.’에 맞춰 절을 올렸다. 나를 비롯한 모든 장수들이 4배를 하고 무릎을 꿇었다. 집사가 향탁 앞으로 다가가 향을 세 번 피웠다. 향을 올린 다음‘부복.’하고 외쳤다. 

 모든 장수들이 무릎을 꿇고 몸을 숙였다가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집사가‘국궁 사배.’하고 외쳤다. 다시 집사의 외침에 따라 4배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장수들과 함께 망궐례를 올리고 떡국을 먹었다.

(상 p177)

 해가 떨어질 때 거제현령 안위, 마량첨사 강응표, 영등포만호 조계종, 사도첨사 김완, 여도만호 김인영이 왔다. 이들과 함께 떡국을 먹고 겸해 술도 마셨다. 거제현령과 사도첨사, 여도만호는 늦게까지 마시다 돌아갔다. 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시름이 겨웠다. 상산자석연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았다. 잠시 앉아 있다가 시 한 수를 지었다.

“십 년을 갈아 온 칼이 칼집 속에서 우는구나.

 관산(고향)을 바라보며 때때로 만져 보니, 

 대장부의 위국공훈을 어느 때에 드릴 것인가.”

(하 p7)

 닭이 세 번 울 때 일어나 의관을 갖춰 입었다. 경상 앞에 좌정했는데, 예화가 들어와 허리를 굽혔다.

“오늘이 장군 생신입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오늘이 정녕 내 생일이란 말이냐?”

 예화가 미소를 지으며 삽주차를 내려놓았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나는 찻잔을 집어 들며 말했다.

“생일을 챙길 정도로 한가롭지는 않다.”

 예화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래서 미역국만 끓였습니다.”

 나는 경서에 눈길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굶어 죽는 백성들을 보면 그것도 호화스러운 것이다.”

(하 p16)

 잠시 후 기러기 떼가 밤하늘을 끼룩끼룩 울며 날아갔다. 공격을 재촉하는 임금의 교지는 추상같은데 날씨는 겨울로 치달았다. 한동안 앉아 있다가 자리를 펴고 누웠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니 온갖 생각이 일었다. 늦은 밤까지 시름에 잠겨 있다가 시를 한 수 지었다. 

水國秋光暮   한 바다에 가을 빛 저물었는데

驚寒雁陣高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憂心輾轉夜   가슴에는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殘月照弓刀   새벽 달 창에 들어 활과 칼을 비추네.

(하 p61)

 이곤변이 내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일찍이 명나라는 관리를 뽑는 데 학문을 우선시했고, 왜국은 무사를 뽑는 데 그 재능을 높이 꼽았습니다. 다만 조선만이 신분과 가문을 보고 관리를 뽑습니다. 이는 곧 망국의 길입니다.”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과연 듣고 보니 그렇다.”

 삼천진권관 이곤변. 고성현령 조응도와 밤이 깊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충신 중에 충신이다. 어디서 이들과 같은 장수를 또 얻을 수 있겠는가? 밤에 먹을 갈아 능(能)자를 썼다. 

(하 p123)

  점심을 먹고 앉았는데, 선전관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어명이라고 외쳤다. 나는 객사 안을 한 차례 둘러보고 밖으로 나갔다. 선전관 두 명이 금부도사 없이 마당 가운데에 서 있었다. 내가 마당으로 내려서자, 선전관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에서 파한다는 교서를 읽었다. 

 어디서 듣고 왔는지 백성들이 객사 마당으로 몰려들었다. 진중의 군관들과 아병, 군사, 격군들도 모여들었다. 교지를 본 시위장 도지와 지도만호 송희립이 무릎을 꿇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소비포만호 이영남, 귀선 좌돌격장 이기남, 우돌격장 이언량도 눈물을 뿌렸다. 그와 동시에 시병, 아병과 군사, 백성들이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교서를 읽은 선전관이 재촉했다.

“영감, 도성으로 올라가야 하겠습니다.”

(하 p163)

 내가 형좌에 앉자 머리에 씌운 봉두(얼굴 가리개)를 벗겼다. 국문관 윤근수가 상좌에 앉아 평문(말로 하는 심문)을 시작했다. 윤근수가 포박되어 있는 내게 큰소리로 물었다.

“죄인은 그동안 임금의 은혜를 한껏 입었는데, 어찌해 적들을 치라는 어명을 받고도 나가 치지 않았는가? 듣자하니 죄인은 왜군 장수인 가등청정의 뇌물을 받았다는데, 그 죄를 인정하는가?”

 나는 고개를 곧추세우고 대답했다.

“소인은 왜적들을 칠 시기와 장소가 합당치 않아 나가지 못한 것뿐이지, 결코 뇌물을 받고 나가지 않은 일은 없소이다.”

 윤근수가 재차 다그쳤다.

“어명을 받고 시행하지 않으면 대역죄로 다스려지는 건 알고 있는가?” 

 나는 윤근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어명을 받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쟁의 승패가 달린 싸움을 함부로 할 수 없었소.”

(하 p168)

 추포되어 갇힌 지 한 달 만에 의금부 옥사를 나왔다. 날씨는 쾌청하고 바람은 불지 않았다. 만신창이 된 몸을 이끌고 숭례문 밖에 이르렀다. 생원 윤간의 종 집에 조카 분, 아들 울, 도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루에 앉아서 집안사람 윤사행, 원경과 함께 회포를 풀었다. 

 곧 이어 지의금부사 윤자신이 와서 위로하고 비변랑(종6품) 이순지도 왔다. 이들의 위로를 들으니 슬픈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지사 윤자신이 돌아갔다가 술을 가지고 왔다. 정으로 술을 권하므로 사양할 수 없어 마셨다. 

(하 p176)

 곧 말을 타고 아산 해암리로 달려갔다. 어머니가 탄 배는 벌써 해암리 포구에 와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종복들도 눈물을 뿌렸다. 나는 슬픔을 가눌 수 없어 하늘을 향해 부르짖었다. 

“충성을 다 하렸더니 죄가 이미 이르렀고, 효성을 바치렸건만 어버이마저 가버렸네! 인제야 어서 죽기만 기다려야 하련가? 마음을 돌아보니 가슴은 찢어지고, 비조차 내리는데 금부도사는 길 재촉하네! 천하에 나 같은 사람 또 어드매 있을꼬.”

(하 p183)

 해가 질 때 영암에 사는 사삿집 종 세남이 알몸으로 뛰어들어왔다. 알몸으로 온 까닭을 물으니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종 세남에 의하면, 이달 5일 좌수영 격군으로 선발되어 거제에 이르렀다. 6일날 거제 옥포에 들어갔다가 말곶을 거쳐 부산 다대포로 진출했다. 다대포에서 왜선 8척을 발견하고 조선수군이 포를 쏘았다. 잠시 후 왜놈들이 몽땅 뭍으로 올라가고 빈 배만 남았다. 조선수군이 그것들을 모조리 끌어내어 불질렀다. 그 길로 기세 좋게 부산 절영도 바깥 바다로 들어갔다. 

 이때 대마도 쪽에서 온 1000여 척의 왜선을 만났다. 적선 1000여 척과 싸우다가 패해 모두 동해로 떠내려갔다. 판옥선이 동해로 밀려 죽기 살기로 노를 저었다. 간신히 칠천량으로 돌아와 상륙하다가 복병에 걸려 도륙당했다. 이때 거북선 3척, 판옥선 100척, 협선 70척이 불탔다. 요행히 세남만은 간신히 목숨을 보존해 도망쳐 왔다는 것이다. 

(하 p216)

 저녁에 밝은 달이 수루 위를 비추니 심회가 편치 않았다. 이제 진영에 남은 함선은 겨우 12척이었다. 왜적은 점점 더 전력을 보충하고 세력을 확장하는데, 대처할 방법은 막막했다. 근심에 쌓여 수루에 앉았는데,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밝은 달을 올려다보며 시 한 수를 읊었다. 

閑山島 月明夜 上戊樓    한산섬 달 밝은 밤 수루에 홀로 앉아

撫大刀 深愁時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何處 一聲羌笛 更添愁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끓나니.

(하 p234)

“신 이순신 삼가 장계를 올립니다. 임진년부터 지금까지 적이 감히 전라도를 지나 충청도로 올라가지 못한 것은 수군이 길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수군을 버린다면 적은 충청도를 거쳐 곧바로 한강에 이를 것입니다. 그것이 신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바입니다. 엎드려 빌건대, 신에겐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이들을 이끌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다면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전선의 숫자는 적지만, 신이 살아 있는 이상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하 p236)

제목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상, 하 권)

지은이 최인

분류 장편소설

크기 225mm x 152mm 신국판

발행처 도서출판 글여울

발행일 2024년 6월 1일

페이지 <상권> 384p <하권> 368p

가격 각 1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