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Susan Sontag (1933. 1. 16. ~ 2004. 12. 28.)
미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 예술평론가, 극작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사회운동가.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 Against Interpretation(1966)』를 통해 문화계의 중심에 섰다. 해박한 지식과 특유의 감수성으로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렸으며, 인권과 사회문제에도 거침없는 비판과 투쟁으로 맞서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15세에 버클리대에 입학했다가 다시 시카고대로 옮겨 대학생활을 시작한 후 17세에 결혼한다. 25세에는 하버드대 철학박사학위를 받아 각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맡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문단과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64년 그녀가 31세 되던 해에 발표한 『해석에 반대한다』 와 『캠프에 대한 단상』 이라는 두 편의 글 때문이었다. 당시는 마침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가 『소설의 죽음』 을 선언해 문단에 파문을 일으켰던 해인지라 기존의 관습과 전통에 도전한 그녀의 에세이 두 편은 모더니즘의 종언을 선포한 피들러의 글과 함께 1960년대 반문화의 서장을 연 기념비적 선언문이 되었다. 손택은 2002년 9월 미국의 9.11 테러 1주년을 맞이해 뉴욕타임스에 《진정한 전투와 공허한 은유》란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그녀는 “대테러전쟁은 암이나 빈곤, 마약과의 전쟁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은유적’ 전쟁에 불과하다” 며 “그럼에도 미 행정부가 전쟁을 선포한 것은 미국의 힘을 무한정 사용하기 위한 의도” 라고 주장했다. 2003년에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 는 찬사를 받으며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했다. 손택은 병생 질병에 대해 깊이 사유했다. 아버지를 폐결핵으로 잃고 어머니를 폐암으로 잃었으며 40세에 유방암을 극복하면서, 질병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고찰을 『은유로서의 질병』에 남겼다. 또한 에이즈에 걸린 친구들이 죽어 가자 ‘에이즈와 그 은유’를 남겨 질병 자체를 죄악시하고 터부시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린 바 있다. 열입곱에 결혼했다가 8년 뒤 이혼, 어린 아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손택은 몸이 좋지 않았을 때도 독서와 집필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여인이기도 하다.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손택은 “아름다움에 압도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억세서 아무리 무자비하게 정신을 흩뜨리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겨낸다.”고 쓴 바 있다. 두 차례의 암을 이겨 낼 수 있었던 저력 또한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가 그 원천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저서
은인 The Benefactor(1963)
해석에 반대한다 Against Interpretation(1966)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Style of Radical Will(1969)
은유로서의 질병 Illness as Metaphor(1977)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I, Etcetera(1977)
인 아메리카 In America(1999)
강조해야 할 것 Where the Stress Falls(2001)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2003)
수상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평화상
1999년 전미도서상 소설부문
1977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부문
손택의 대표적인 비평집이라 볼 수 있으며 미학이나 문학비평 영역에 시사하는 바가 많은 글들이 담겼다.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 에서 “예술에서 고정된 의미를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예술은 예술 자체로서 경험해야 한다” 고 하며, 예술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수성’ 을 이야기한다. 손택은 그것을 ‘예술의 성애학’ 이라고 부르며 해석을 위한 해석을 적극적으로 비판한다. 그녀에 의하며 예술의 본질은 강간이 아니라 유혹인데,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려는 해석은 예술에 대한 강간 행위가 된다.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이다. 손택은 단언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감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잘 보고 더 잘 듣고 더 잘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다.” 수많은 강연과 저술 일정 중간에도 짬짬이 연극과 춤, 영화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던 것도 필경 그 같은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2003년 10월 12일 독일출판협회는 제55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수전 손택에게 평화상을 수여했다. “거짓 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 는 것이 시상 이유였다. 독일출판협회가 잘 지적했듯이 손택은 첫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1966』에서부터 최근작 『강조해야 할 것(2002)』에 이르기까지 기계로 대량 복제되는 이미지가 한 문화의 감수성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다양한 방식으로 일관되게 추적해 왔다. 그리고 미군의 폭격기들이 한창 바그다드 외곽 지역을 폭격하고 있던 순간에 출판이 된 이 책 『타인의 고통』은 그 노력의 결정판이다.
어떤 의미에서든 이 책은 타인의 고통을 보고 어떤 감각적 반응과 이성적 태도를 지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물론 그러한 육체적 고통은 대개의 경우 전쟁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전쟁 상황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장면들을 사진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에 의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느낌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 책의 가장 탁월한 전달 방식이다. 독일의 아우슈비츠는 20세기 광기의 역사를 연 포문이다. 이전의 전쟁은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과학과 이성적 합리주의가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믿는 근대 이후에도 전쟁은 계속되었으며 잔혹한 폭력과 비이성적인 행동은 그치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서 드러난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가혹 행위와 민간인 오폭에서 적나라하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손택의 관잘에 따르면 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사방팔방이 폭력이나 잔혹함을 보여주는 이미지들로 뒤덮여 있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발달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컴퓨터, PDA 등의 작은 화면 앞에 붙박인 채로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앙의 이미지를 속속들이 볼 수 있게 해줬다. 그렇지만 이 말이 곧 “타인들의 괴로움을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이 두드러질 만큼 더 커졌다는 말은 아니다.” 이미지 과잉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린다. 그리고 이렇듯 타인의 고통이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가 된다면, 사람들은 타인이 겪었던 것 같은 고통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지고,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비웃게 된다는 것이 손택의 지적이다.
『타인의 고통』을 쓰고 있을 때 손택은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시청자들은 잔인하게 묘사된 폭력에 익숙해져 버린 걸까?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런 이미지 때무에 현실 인식이 손상된 걸까?” 손택은 스스로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고통의 재현물, 예컨대 전쟁이나 참화를 찍은 사진들을 볼 때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지 분석해 본다. 손택의 지적에 따르면 “고통을 둘러싼 도상학은 기나긴 족보를 갖고 있다” 특히 재현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는 고통은 신이나 인간의 분노가 낳은 것이라고 이해되는 고통이었다. 이런 고통의 재현물(예컨대 고문당하는 순교자나 박해받는 예수)은 뭔가 교훈을 주거나 본보기를 보이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틈이나 결렬한 것”이었곡, 이런 욕망은 얼마 안가 “사람들은 원래 소름끼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을 타고 났다”는 주장으로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끔찍함 terribilit 속에 매력적인 아름다움이 놓여 있다. 숭고하거나 장엄하며, 그도 아니면 비극적인 형태로 아름다움을 담고 있으니, 유혈 낭자한 전투 장면도 아름다울 수 있다 등등의 주장이 나오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욕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사고방식 안에서는 고통의 재현물이 더 이상 교훈이나 본보기 구실을 하지 못한다. 단지 ‘병적일 만큼 음란한 정신 상태’의 시각적 등가물이 될 뿐이다. 현대에 들오와 극한의 상태에서 발생한 현실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가 일종의 ‘포르노그라피’가 되어버리고, 이런 이미지를 보는 행위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일종의 관음증이 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군다나 날이면 날마다 끊임없이 폭력의 이미지가 쏟아져 나오는 현대 사회에 들어와 이미지의 성격 자체는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고, 소란을 불러 일으켜야 하며,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드는 쪽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쉴새없이 이미지가 자신을 드러내는 상황, 한줌의 이미지들이 반복해서 자신을 과잉 노출하는 이 상황을 그밖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돌파할 수 있겠는가?” 라고 손택은 반문한다. 이렇듯 이미지 자체가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갈수록 자극적인 요소들을 요구하게 되면 이미지들은 타인의 고통을 재료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타인의 고통은 “소비를 자국하는 주된 요소이자 가치의 원천”이 된다. 바야흐로 오늘날의 문화에서는 이미지가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셈이다.
손택은 프랑스의 철학자 베이유와 영국의 소설가 울프를 좇아서 이렇게 얘기한다. “폭력을 당하게 되면 그 사람은 숨을 쉬는 생생한 인간에서 사물로 변형되어 버린다”고. 즉 “인간을 하나의 개인으로서, 인류로서 구별케 해줄 수 있는 바가 잔인하게 파괴되어 버린다”고. 이 말은 타인의 고통을 담은 이미지에도 들어맞는다. 타인의 고통을 보여주는 어마어마한 양의 이미지가 쏟아지면 사람들은 이런 고통 자체에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한번 충격을 줬다가 이내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종류의 이미지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반응 능력을 잃어가게 된다. 연민이 극한에 다다르면 결국 무감각에 빠지기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손택은 이렇게 주장한다. 연민은 쉽사리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 (‘우리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까지 증명해 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그런 고통을 쳐다볼 수 있는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이다. 또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나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된 두려움을 극복해 우리의 무감각함을 떨쳐내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문학은 자유다』는 에세이 작가이자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였던 수전 손택이 생의 마지막 날들에 남긴 평론과 연설을 모아 정리한 유고 평론집이다. 손택은 2004년에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평론집과 소설, 에세이, 영화 시나리오, 희곡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국가보다 개인의 양심을 더 우선했던 그녀는 ‘예술에 온 정신이 팔린 심미가’이자 ‘열렬한 실천가’로 불리기를 원했다. 이 책은 그녀의 평론과 연설을 통해 열정적이고 매력적인 수전 손택의 사상을 소개한다.
『문학은 자유다』에 담은 열여섯 편의 글을 수전 손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말년에 쓴 것들이다. 1부에 실린 글 가운데 몇 편은 죽기 전 병상에서까지 고치고 다듬으면서 애정을 쏟았던 글이다. 이 책은 열정적이고 매력적인 손택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라도 1933년에 뉴욕의 중산층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2004년 12월 28일,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하기까지의 손택이 그리워질 것이다. 비범하고 성실했던 손택은 장서 1만 5천 권을 보유했던 열렬한 독서가였다. 시카고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만난 유럽의 지성들, 베냐민, 롤랑 바트르 들과 교류했던 손택은 실천하는 지식인으로도 유명했지만 빼어난 문학평론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손택은 한 편의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무려 3천매나 되는 원고를 메워 넣었다가 내용을 추려 내는 사람이었고 매 페이지마다 30~40개의 초고를 마련할 정도로 철저한 평론가였다. 『문학은 자유다』 1부 ‘아름다움에 대하여’에서 우리는 치열한 독서가로서의 손택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다소 낯선 이들, 레오나드 침킨이나 안나 반티의 매력적인 책들을 소개한 글이나 빅토르 세르주에 대한 그간의 애정을 드러내 보여 준 평론은 세계 지성들에 대한 훌륭한 안내문이다.
손택이 쓴 정치 비평은 자고로 수필이란 이러해야 한다는, 특히나 지성인의 수필이란 이정도로 논리적이고 정연해야 한다는 모범이 되는 글이다. 진지하고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자유롭게, 명쾌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지성인이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특별한 의무라 하겠다. 베트남 반전운동부터 이라크전 반대 등,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사람들과 기꺼이 등을 지고 과감한 주장을 했던 손택의 육성을 2부 ‘미국의 야만성’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