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옌
Mo Yan 莫言 (1955년 2월 17일)
모옌(莫言, Mo Yan)은 중국 산둥성(山東省) 까오미(高密) 따란향(大欄鄕) 핑안춘(平安村)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관모예(管謨業)이나 글로만 뜻을 표할 뿐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莫言)’이란 필명을 쓴다. 모옌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문화대혁명이 일어나자 학업을 포기하고 수년 간 농촌 생활을 하다가 소학교를 중퇴한 뒤 18세 되던 해 면화 가공 공장에서 직공으로 일했다. 그는 1976년 20세 나이로 고향을 떠나 중국 인민해방군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 문학에 눈을 돌려 1978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후 해방군 예술학원에 입학, 1986년에 문학과를 졸업했다.
모옌은 이후 베이징 사범대학과 루쉰 문학창작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81년부터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인민해방군 총참모부 소속 1급 작가로 일하다가 1997년 사직하고, ‘검찰일보’에 재직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1981년 격월간지『연지(蓮池)』에 단편소설「봄밤에 내리는 소나기(春夜雨)」를 발표한 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1984년 발표한「황금색 홍당무(金色的紅蘿蔔)」(1985년「투명한 홍당무(透明的紅蘿蔔)」로 개작)가 좋은 평가를 얻게 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1987년 대표적인 장편소설『홍까오량 가족』을 발표해 반향을 일으켰다. 그 작품의 일부를 쟝이모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해 1988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이는 모옌의 작품이 전세계 20여 개국으로 번역 출간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장편소설『티엔탕 마늘종 노래(天堂蒜之歌)』(1988),『열세 걸음(十三步)』,『술의 나라(酒國)』(1993),『풀을 먹는 가족(食草家族)』(1993),『풍유비둔(豊乳肥臀)』(1995),『탄샹싱(檀香刑)』(2001),『사십일포』(2003),『생사피로(生死疲勞)』(2006)등을 발표했다. 또한「환락」,「생화를 품은 여인」,「폭발」,「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등의 중편소설과「그네 틀의 흰둥이」,「메마른 강」,「엄지수갑」,「눈얼음 미녀」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이 중「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는 장이모 감독에 의해 영화 ‘행복한 날들(幸福時光, Happy Time, 2000)’로 제작된 바 있다.
『풍유비둔』은 모옌의 창작상 최고조에 오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티엔탕 마을 마늘종 노래1,2』는 1980년대 중국의 개혁 · 개방의 전성기를 배경으로 농촌 마을과 관료 사회의 부패 양상을 탁월한 주제의식과 기교로 그려낸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외에도 모옌은 많은 희곡과 텔레비전 드라마 극본을 썼는데 1997년 창작한 희곡「패왕별희(覇王別姬)」는 무대에 올려져 중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두 달간 연속 공연되면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3년에 출간된『술의 나라』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 소개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모옌은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중국의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영예까지 얻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모옌이 현실과 환상을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절묘하게 융합한 문학 세계를 창조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의 고향인 산동성 까오미현 둥베이(東北)를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2002년 10월부터는 고향의 산둥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모옌은 중국 민중의 삶을 해학적, 직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아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지만, 체제 순응적 작가라는 비판과 중국의 문학작품 검열체제 문제 등으로 수상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저서
톈탕마을 마늘종 노래 (1988)
술의 나라 (1993)
풀을 먹는 가족 (1993)
풍유비둔 (1995)
맹그로브숲 (1999)
탄샹싱(檀香刑) (2001)
열 세 걸음 (2003)
사십일포 (2003)
인생은 고달파 (2006)
달빛을 베다 (2006)
개구리 (2009)
수상
따자(大家)문학상
프랑스 루얼 파타이아 문학상
이탈리아 노니로 문학상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상
홍콩 아시아문학상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문화대상
2011년 마오둔(茅盾)문학상
2011 만해대상 문학부문
2012년 노벨문학상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 중 하나인 마우둔 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중국 가족계획 정책의 이면에 숨겨진 가슴 아픈 현실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비극이며 많은 부작용과 논란을 양산하는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 ‘계획생육’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는 계획생육의 실무자로서 농촌을 돌아다니며 강제로 임신중절수술을 해야 했던 한 산부인과 의사의 이야기를 통해 계획생육이 불러 온 비극을 파헤친다. 또한 여러 인물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묘사하면서 폭력적인 인구 정책이 몰고 온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인물들 간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 책은 편지글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소설처럼 읽히며, 마지막에는 9막짜리 극본이 덧붙여져 있다.
『개구리』는 형식적으로는 자전적 1인칭 소설이되 실제 주인공은 고모이며, 소설이긴 하되 커더우가 수신자인 스기타니 요시토에게 보내는 다섯 통의 장문 편지이다. 또한 마지막 다섯 번째 편지에는 9막짜리 극본이 붙어 있다. 형식상 편지글이 분명하지만 내용은 소설처럼 읽히고, 어찌 보면 소설인데 작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분명 서신체이다. 편지라면 당연히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을 것인데 발신자는 작가 자신이라고 해도 수신자로 적혀 있는 스기야 요시히토가 과연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다. 작가가 서문에서 오에 겐자부로를 언급했으니, 수신자가 바로 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가능하지만 모옌은 부정하고 있다.
모옌은『개구리』에서 중국 최초로 ‘계획생육’을 정면으로 다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계획생육’은 중국이 인구 억제를 위해 실시하는 ‘한 가정 한 자녀’ 정책으로, 본격적으로 실행된 1971년부터 지금까지도 수많은 중국인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 주고 있다. 1949년 신중국 무렵 5억 4천 100만여 명이던 인구가 1969년 8억을 넘어서자, 초조해진 중국 정부는 “핏물이 강을 이룰지라도 초과 출산은 허락할 수 없다”와 같은 과격한 구호와 함께 지방 관리들에게 무조건 ‘생육지표’를 끌어내리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강제집행에 따른 부작용이 중국 곳곳에서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비극이다. 산둥 성 정부의 폭력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비판하다 4년 3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던 인권 변호사 천광청이 지난 4월 미국으로 망명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중국 산시 성에서 계획생육을 위반하고 둘째를 가진 7개월 임신부를 강제로 낙태한 사실이 인터넷에 공개돼 비난 여론이 들끓기도 했다. 모옌 소설의 불변하는 주제는 ‘인성’이다. 그는 한국어 판 서문에서 “소설을 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을 쓰는 것”이며 “나는 ‘사람을 똑바로 보고 쓰기’로 했다.”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의 고모를 소설의 주인공인 산부인과 의사 완신의 모델로 삼았다. 그녀는 가오미 둥베이 향에서 50년 넘게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계획생육 정책에 따라 수많은 임신중절수술을 해야 했던 역사의 산증인이다. ‘계획생육’이라는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모옌의 관심은 역사적 풍랑에 휘말린 인간이며, 이렇듯 자신이 지켜봐 온 인물들을 소설화하여 보다 생생한 모습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모옌은 ‘계획생육’이라는 주제 아래 사람들이 처해 있는 현실을 묘사하면서 폭력적 인구 정책이 몰고 온 여러 가지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어, 인물들 간의 갈등을 세세히 그리고 있다.
작품의 제목『개구리』는 작가의 고향인 중국 가오미 둥베이 향의 토템으로, 강력한 생식력 덕분에 다산의 상징으로 꼽히며 설날에 붙이는 민화에 단골로 등장한다. 또한 ‘개구리(蛙)’는 갓난아기를 뜻하는 와(娃)와 동음어이며 중국 신화에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여신 여와(女)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개구리’를 통해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여성의 출산조차 법으로 옭아매려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 숨 쉬는 민중의 생명력을 찬미한다.
사실 개구리가 뭐 무서워요? 사람과 개구리는 조상이 같잖아요. 올챙이랑 사람 정자랑 모습도 비슷하고 사람 난자랑 개구리 난자도 별반 차이 없어요. 그리고 당신 3개월 된 태아 표본 본 적 있어요? 긴 꼬리를 늘어뜨린 모습이 변태기 개구리의 모습과 거의 똑같다고요. (중략) 왜 ‘개구리 와(蛙)’하고 ‘인형 와(娃)’하고 발음이 같은지 알아요? 왜 엄마 배 속에서 아기가 처음 나왔을 때 우는 소리하고 개구리 울음소리가 비슷한지 알아요? 왜 우리 둥베이 향 점토인형 가운데 많은 수가 개구리 한 마리를 안고 있는지 아냐고요! 왜 인류의 시조를 여와(女)라고 할까요? 발음이 같은 걸 보면 인류의 시조가 바로 커다란 암컷 개구리였을 거예요. 인류가 개구리에서 진화했을 거라고요. 유인원에서 진화했다고 말하는 건 완전히 잘못된……. ―본문중에서
모옌은 1955년 출생하여 문화대혁명이라는 중국의 대격변기를 고스란히 겪으며 성장했다. 이미 오래전에 문화대혁명이 마무리되고 계급투쟁도 끝났지만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가슴속에 공포가 남아 있다고 그는 고백한다. <달빛을 베다>에는 그 당시 중국 사회의 광기와 폭력이 주는 외로움과 굶주림, 그리고 공포감 속에서 자라난 어린 모옌의 자전적인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 그는 대장장이, 목수, 농부, 길거리 민요가수, 자전거 수리공, 과부 등 힘없고 고통받는 약자들을 등장시켜 거대한 사회의 부조리함에 매몰되는 개인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
악한 사람이 빚어내는 공포는 갈수록 줄어들기를 희망하지만, 귀신과 요괴들이 등장하는 옛날이야기나 괴담, 동화가 빚어내는 공포만큼은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귀신과 요괴가 등장하는 옛날이야기와 동화야말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과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지향을 가득 품은 것이며, 또한 문학과 예술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작가의 말에서) 모옌은 사방이 온통 ‘붉은 조류(潮流)’로 가득 찬 시대 속에서, 어떻게 하면 우의와 인간애와 관심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포야말로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절망에서 도망쳐 나갈 역량을 만들어내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공포 속에서 희망은 암흑천지 속의 불빛처럼 앞길을 비춰주고 우리가 공포와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용기가 된다고, 그리고 그러한 희망과 용기는 바로 이야기, 공포 이야기 속에 있다.
<달빛을 베다>에는 아이들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아이들이야말로 공포 이야기의 최대의 수혜자이고 역으로 공포 이야기에서 아이들의 존재는 빠질래야 빠질 수 없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빛을 베다>의 아이들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때로는 천진난만하고 순박한 시골아이의 모습으로, 때로는 철딱서니 없이 말썽만 피우는 개구쟁이의 모습으로, 때로는 목숨까지 바꾸는 지극한 효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하나같이 사회의 모순과 비합리성, 인간의 잔혹하고도 비겁한 본성을 거침없이 풍자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향토작가답게 모옌은 시골 정경에 대한 넉넉한 묘사와 우스꽝스럽고 위트 넘치는 입담으로 독자들로부터 큰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아이들이 넉살 좋게 부모를 비꼬고 세상을 비꼬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달빛을 베다>의 아이들은 그 어느 시대의 또래들보다 혹독한 성장통을 앓는다. 문둥병 걸린 부모들이 온 마을 사람들의 경멸을 받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고(「문둥병 걸린 여인의 애인」). 망나니에서 하루아침에 혁명위원회 주임으로 승격한 아버지가 방자하게 구는 행동을 보며 가슴 졸이기도 하고(「설날 족자 걸기」).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들면서도 홀어머니에게 선물할 따뜻한 털모자를 목숨보다 소중히 지키기도 한다(「아들의 적」). 이들은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진다.
일전에 모옌은 “작가는 곧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기에 적합한 토양을 찾아낸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내 고향 저 검디검은 흑토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 그 흑토는 농작물의 씨앗이 싹트고 자라기에는 척박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기에는 기름진 옥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렇듯 모옌은 척박한 대지를 문학의 원천으로 삼아 중국인들의 모든 욕망과 감정을 담아냈다. “모옌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莫言)’라고 필명을 붙였지만 그의 붓끝은 천만 마디가 모자랄 지경이다”라는 중국의 문학평론가 왕더웨이의 말처럼, 모옌은 수려한 필력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천부적인 이야기꾼으로서의 입담은 물론, 시대의 흐름을 날카롭게 낚아채는 관록, 그리고 가슴 묵직해지는 감동까지 놓치지 않는다.
혹독한 성장통을 앓고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진 아이들은 사회의 모순과 비합리성, 인간의 잔혹한 본성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대표적인 향토작가답게 모옌은 시골 정경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위트 넘치는 입담으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달빛을 베다>는 작가가 강한 애착을 갖고 선별한 대표 소설집으로, ‘공포와 희망’이라는 주제로 열두 편의 이야기를 달빛을 베듯 신기(神技)에 가까운 노련한 솜씨로 풀어놓고 있다. “숱한 고난을 경험하고 참고 견뎌야 했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미치광이가 되지도 않았거니와 타락하지도 않고 어엿한 작가로 성장했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토록 길고 지루한 암흑의 세월을 보낼 수 있게 지탱해주었을까? 그것은 바로 희망이었다.” ―작가의 말
이때 써늘하고도 축축하게 습기가 도는 밤바람이 또 한바탕 불어 닥쳤다. 바람결에 휩쓸려 안뜰 양편에 줄줄이 늘어세운 유명 인사의 종이 꼭두각시들이 우수수,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환청일까, 풀로 붙인 종잇장 부스럭거리는 소리 가운데 피식 비웃는 소리가 곁들여진 듯싶었다. 나는 당장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등줄기에 찌르르하니 소름이 끼쳤다. 역시 종이로 만든 붉은빛 등롱마저 갑작스레 종이에 촛불이 옮겨 붙었는지 등롱 격자 안에서 화르르 타오르더니 삽시간에 불덩어리로 바뀌어 주변을 환히 비치다가는 이내 꺼져버리고, 집 안은 곧바로 캄캄절벽이 되고 말았다. 불빛이 가장 밝게 타오르던 그 순간에, 나는 분명히 보았다. ―「설날 족자 걸기」
피파훙은 안뜰 한구석 투명한 빛깔로 번쩍거리는 황금 사슴 딱지 자전거를 가리키면서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혁명이 없었다면 저런 황금 사슴 딱지가 생겨날 수 있었겠어?” 그리고 또 내 어머니가 입은 바지를 가리켰다. “혁명이 없었다면 당신이 그렇게 좋은 모슬린 천 바지를 입어보기나 했겠느냐고!” 그런 다음 이번에는 내게 물었다. “피첸, 어디 말 좀 해봐라. 혁명이 좋은 거냐, 나쁜 거냐?” “좋지요, 아주 좋고말고요!” 내가 대답했다. “혁명은 시끌벅적 흥청망청, 혁명은 부랑자, 건달,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없었다면 아빠가 어떻게 추이주 아줌마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릴 수 있겠어요?” ―「설날 족자 걸기」
뭇사람의 눈초리가 모두 자기 한 몸에 못 박히듯 쏠려 있다. 그는 여전히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목구멍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미 소리를 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는 입을 딱 벌리고 자기 주먹을 있는 힘껏 입속에 쑤셔 넣었다. 그의 가슴속은 분노의 불덩어리로 가득 차, 주먹이라도 입속에 쑤셔 넣어야만 거의 미쳐 날뛸 지경에 다다른 격렬한 정서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메기 아가리」
남자든 여자든 길바닥에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어느 누구도 그를 본 척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무시당한 그의 가슴속에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면서, 그는 미친 듯이 소나무껍질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나무껍질이 입술을 훑어 터지게 만들었고 이빨을 시리게 했다. 그는 미웠다. 엄지에 채워진 차꼬 수갑이 미웠고 사람을 통구이로 만드는 뜨거운 태양이 미웠으며, (…) 하다못해 온 세상 모든 것이 다 밉기만 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무껍질을 이빨로 물어뜯는 것뿐이었다. ―「엄지수갑」중에서
지금까지 수십 편의 작품을 써낸 모옌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그야말로, 암울한 사회와 부조리에 굴하지 않고 작가로서의 자아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겠다는 역설적 표현이자 근본적 저항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0년대 중국의 어느 소도시. 장츠추와 팡푸구이는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궁색하게 살고 있는 이웃이자 같은 학교 물리교사이다. 이 둘은 대학 교육을 받은 지식인이지만 그들의 현실은 열악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다. 집에서는 초라한 가장이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쉴새없이 학생들을 채찍질하고 내몰아야 하는 교사일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팡푸구이가 수업 중 졸도를 하자 학교에서는 그가 과로로 순직한 것으로 처리해버린다. 팡푸구이의 ‘순직’ 소식이 학교 밖으로 퍼지면서, 박봉에 업무 과다로 죽음으로 내몰린 교사를 돕자는 캠페인이 벌어진다. 이에 시 정부는 예산을 대폭 투입하여 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로 결정한다.
한편 죽지 않은 팡푸구이는 장의사로 실려가던 차 안에서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교장은 그가 죽으면 모든 교사들의 삶이 나아진다며 ‘작은 비인도주의와 큰 인도주의를 맞바’꿀 것을, 팡푸구이에게 그대로 죽을 것을 강요한다. 시작은 어느 소도시의 중학 교사가 교단에서 과로로 기절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작은 사건이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 지식인들의 억압적인 현실. 대학입시 위주의 비인간적인 교육 풍토. 고기 한 점 먹기 힘든 가난과 맞물리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로 기형적으로 발전해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팡푸구이와 장츠추, 그 가족들은 그동안 허상처럼 간신히 유지해오던 인간성을 점차 잃어가면서 비극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한다.
모옌은 30년 넘게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고향 산둥 성 가오미의 농촌을 배경으로 중국 인민의 원시적 생명력을 형상화해왔다. 모옌은 1987년 고향 가오미에서『열세 걸음』을 처음 집필했다. 참새가 두 발로 종종 뛰지 않고 한 발 한 발 열두 걸음까지 걷는 걸 보면 천운을 얻는다. 하지만 열세 번째 걸음을 걷는 걸 보는 순간 열두 번째 걸음까지 들어온 모든 운이 곱절의 악운이 되어버린다는 러시아 민담을 모티프로 쓰인『열세 걸음』은 1989년 초판이 출간된 지 십여 년 후인 2003년 대폭 개작되어 재출간되었다.
모옌은 중국 역사와 현실을 배경으로 역사와 환상, 현실과 상상을 결합시켜서 기이하고 황당하고 신기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모옌의 이야기가 갖는 독특한 개성이 여기에 있다. 그의 소설에서 숱하게 등장하는 기이하고, 황당하고, 엽기적인 이야기는 그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역사의 광기와 억압된 현실의 상징이자 증거이다.
2012년 중국 대륙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 소설은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화자 ‘너’가 청자인 ‘우리’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너’는 분필을 씹어 삼키며 ‘그들’, 즉 지방 소도시의 지식인들 팡푸구이와 장츠추, 그리고 그 가족들의 비극적인 삶을 들려준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너’와 ‘우리’ 그리고 ‘그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시간 흐름도 뒤엉킨다. 서술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서술자의 주관적 느낌이나 중국의 민담들과 뒤섞여 진행되는 소설은, 이야기와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모옌의 작품 형식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하지만 마치 전설이나 민담, 신화와 같은 이 이야기는 중국의 20세기 묘사하고 있다. 모옌은 우리가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어하지도 않지만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을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투과해,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관점의 역사만이 진실이 아니라고 웅변한다. 또한 하나의 시점이나 하나의 화자가 등장인물의 운명과 사건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을 거부한다. 중국의 프란츠 카프카, 윌리엄 포크너로 불리는 모옌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규정할 수 있다. 모옌은 1981년 단편「봄밤에 내리는 소나기」로 등단한 이래 열한 편의 장편소설과 여덟 권의 소설집을 펴내고 창작 희곡「패왕별희」를 무대에 올려 40회 연속 공연하는 성공을 거두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다.
『열세 걸음』은 동물원 우리 안에 갇힌 서술자가 분필을 씹어 삼키며 청자(혹은 독자)에게 자신들의 도시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서술 시점이 끊임없이 바뀌면서 서술자는 때로 ‘나’였다가 ‘너’가 되고, 청자도 처음에는 ‘우리’인가 싶지만 곧 ‘너’가 되고 또 어느 순간 ‘나’로 등장한다. 서술자의 이야기 속 ‘그들’도 ‘나’와 ‘너’로 번갈아 등장하길 반복한다. 이야기도 시간 순서로 전개되지 않는다. 서술자의 머릿속에 떠오는 대로, 서술자의 주관적 느낌이나 중국의 민담들과 뒤섞여서 전개된다. 하지만 마치 전설이나 민담, 신화 같은 이 이야기들은 중국의 20세기 현실을 묘사하고 있다. 모옌은 우리가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어하지도 않지만 엄연하게 존재하는 현실을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투과해, 어느 한 사건, 어느 한 관점의 역사만이 진실이 아니라고 웅변하고, 하나의 시점이나 하나의 화자가 등장인물의 운명과 사건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을 거부한다.
(본문중에서) “아주 오래된 아름다운 전설이 하나 있어요. 참새가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대요. 참새가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걸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진대요. 참새가 한 걸음 내디디면 횡재수를 안겨주고, 두 걸음을 내디디면 관운을 안겨주고, 세 걸음을 내디디면 여복을 안겨주고, 네 걸음을 내디디면 건강운을 안겨주고, 다섯 걸음을 내디디면 기분이 늘 유쾌한 상태를 누리게 되고, 여섯 걸음을 내디디면 사업이 순조로워진대요. 일곱 걸음을 내디디면 지혜가 곱절로 늘어나고, 여덟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잘하고, 아홉 걸음을 내디디면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게 되며, 열 걸음을 내디디면 생김새가 멋지게 바뀌고, 열한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아름다워지며, 열두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와 애인이 화목하게 어울려 자매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는 거죠. 하지만 절대로 열세 번째 걸음을 보아선 안 된대요. 만일 참새가 열세 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당신 머리 위에 뚝 떨어져 내린다지 뭐예요!”
이 소설의 일부 내용을 장이모우 감독이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제작했다. 이 소설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의 중국 산둥 성 까오미 현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는 까오미 현은 온갖 착취와 부역 등 일제의 만행에 시달리고 있다. 서서히 대오를 정비하며 일본군에 맞서는 중국 민초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소설은 문둥병을 앓고 있는 고량주 양조장집 아들에게 팔리듯 시집가던 따이펑리옌이 당시 꽃가마를 메던 위잔아오와 사랑에 빠져 ‘나’의 아버지를 잉태하는 시점에서 비롯된다. 위잔아오는 양조장집 부자를 살해해 따이펑리옌이 그 안주인이 되도록 한 뒤에 양조장에 일꾼으로 들어가 있다가 점차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며 인근의 민중들을 통솔하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십여 년 뒤 일제의 착취는 점점 심해져가고 양조장의 큰어른인 루어한 큰할아버지(大爺)가 가죽을 벗겨 죽임을 당하는 만행을 당하자 위잔아오는 매복전을 벌여 일본군에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나의 할머니’ 따이펑리옌이 총에 맞아 숨지게 되고 이어지는 일본군의 보복 학살로 까오미 현은 처참한 살육의 땅으로 변해간다. 일제에 맞서기 위해 렁 부대(국민당), 팔로군(공산당), 철판회(민병 조직) 등이 생겨나지만 아직 변변한 무기조차 없이 서로 무기쟁탈전이나 벌이는 형편이다. ‘나의 할아버지’인 위잔아오 사령관은 어느 거대 조직에도 가담하기를 꺼리며 맨 앞에서 민중들을 진두지휘하며 일본군에 저항한다.
소설은 ‘나’가 서술하는 동시에 ‘나의 할머니ㆍ할아버지ㆍ아버지ㆍ어머니’가 주인공 화자로 등장함으로써 이들 가족의 오래전 옛이야기를 바로 현 시점에까지 끌어내리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영화 <붉은 수수밭>에서 생략한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어내고, 무거운 정치적 담론을 배재한 대신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문체로 영화와는 또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모옌의 작품은 영화 <붉은 수수밭>으로 더 친숙하다. 영화가 나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시대에 적응하고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바로 그 영화의 원작이기도 한 <붉은 수수>를 포함한 다섯 편의 중편을 담고 있다. 중편은 각각 독립된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이어지는 장편 소설의 부분으로 볼 수도 있다. 모옌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20세기 초의 중국 산둥 성 까오미 현이 소설의 배경이며 일본의 만행에 투쟁하는 서민들의 이야기이다. 지면을 달리해 발표된 다섯 편의 중편소설이 모여 있기에 시점은 자유롭게 1인칭과 3인칭을 넘나든다.
한 편의 중편소설 안에서도 시점은 변화하기도 하지만 큰 이야기로 묶어 봤을 때 그 시점은 더욱 두드러지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아이가 서술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는 삼대에 걸쳐 이어지는 한 가족의 모습과 더불어 그 가족이 살아내는 시대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점의 변화를 통해 시대를 통과해 내는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민족에 대한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 이야기는 한 인간이 느끼는 삶의 무게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 시대에 대한 그들의 시선에 중점을 둔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가지는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이야기가 삼대에 걸쳐 진행이 되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만 시공간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다른 시공간에도 부패한 정부와 그 정부를 믿지 않는 민병 조직들, 그리고 그들이 저항하는 외부 세력에 대한 묘사는 공통적이다. 특히 모옌이 그려내는 민병 조직의 근원은 가난한 민초들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 사회의 가장 큰 분노와 격변의 근거를 생각해 보기엔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나라의 이 상황에서 읽어보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시대가 만들어 낸 사회상과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고초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분노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개개인의 고초가 아니다. 다섯 편의 이야기가 하나가 되어 동시에 저항하며 일어나는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처럼 그 개개인이 모여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저항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이 책이, 거의 백 년 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책이 여전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에 가치를 부여 할 수밖에 없게 된다.『홍까오량 가족』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다. 위잔아오와 악당 ‘흰 목’의 대결이라든가 까오미 현장인 ‘차오멍지우’와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렁 대장 및 철판회 두목 ‘흑안’과의 대결 등 영웅적인 사내들의 면모와 함께 위잔아오가 따이펑리옌의 시녀였던 ‘롄얼’과 딴살림을 차렸는데 결국 롄얼 모녀가 일본군에 학살되는 이야기. 그리고 일본군에 학살당한 민중들을 묻어두었던 ‘천인 무덤’ 속의 시체를 노리는 개떼와의 일전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들로 빼곡하다.
사실 장이모우 감독이 영화로 제작한「붉은 수수밭」은 독특하고 생기발랄한 영상미학에도 불구하고 원작『홍까오량 가족』에 비해 많은 중요한 에피소드들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또한 중국 공산당만을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등 정치적인 색채를 띤 약점이 있었다. 그러나 원작『홍까오량 가족』은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엮으면서도 유기적인 연관성을 흩뜨리지 않고, 무거운 정치적 담론을 배제한 대신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문체로써 읽는 재미를 톡톡히 선사한다. “훌륭한 작가란 반드시 독창성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고 뛰어난 소설 작품이란 독창성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라고 말하는 모옌은『홍까오량 가족』을 통해 ‘나의 할머니’ 또는 ‘나의 할아버지’ 등 ‘나’를 계속 언급해줌으로써 일인칭 시점이면서도 게다가 전지적인 서술이 가능한 아주 독특한 시점을 선보인다.
즉 “‘나’는 일인칭 시점에서 ‘나’를 중심으로 서술하게 되지만 ‘나의 할머니’는 ‘나’가 아닌 ‘나의 할머니’의 시각으로, 할머니의 심리적인 세계까지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서술 시점은 할머니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데 매우 용이”한 것이 된다. 모옌은 “그 ‘나의 할머니’라는 시점은 순수한 ‘나’라는 일인칭 시점과 비교하자면 아주 간단하게 풍부하고 넓은 시각을 확보할 수 있고, 그 당시만 해도 중국에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어떤 새로운 창작 기법의 하나였다”고 고백한다. 소설『홍까오량 가족』은 ‘나’가 서술하는 동시에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주인공 화자로 등장함으로써 이들 가족의 오래전 옛이야기를 바로 현 시점에까지 끌어내리는 효과를 획득해낸다.
『홍까오량 가족』은 전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어 모옌뿐 아니라 중국 문학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삼십여 년간 농촌을 배경으로 한 소설만을 쓰고 있는 다산(多産)의 작가 모옌은 지금도 여전히 소설을 쓸 때면 고향인 산둥 성 까오미 현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빨강둥이만은 도망가지 않았어요. 그놈은 부친이 머리를 돌려서 어머니를 돌보는 사이에 번개같이 몸을 날렸답니다. 개의 몸뚱어리가 공중에서 펼쳐지더니 은회색의 하늘빛을 빌려 개 등줄기 가운데 영웅의 아름다운 곡선이 드러났죠. 아버지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으나, 개 발톱이 아버지의 얼굴을 긁었답니다. 빨강둥이의 첫 번째 공격은 헛나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양쪽 볼에는 입 크기만 한 상처가 생겼고 피가 진득하게 흘러내렸답니다. 빨강둥이가 다시 한 번 진공했을 때, 아버지는 총으로 막았지만, 빨강둥이는 두 개의 앞발로 총 탁을 누르면서 대가리로 총칼을 아래로 처지게 했으며, 아버지의 품속으로 힘껏 고개를 들이밀었습니다. 내 아버지는 빨강둥이의 뱃가죽에 나 있는 한줌의 하얀 털을 보았고, 그곳을 발길로 날려 걷어찼는데, 어머니가 몸을 앞으로 돌리는 바람에 아버지는 뒤로 벌렁 나자빠지고 말았죠. 빨강둥이는 그 기세대로 눌러왔으며, 기민하게 아버지의 사타구니를 향해 물어뜯었습니다. 어머니는 총 개머리판을 날려 빨강둥이의 단단한 두개골을 내리쳤답니다. 빨강둥이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진공을 했는데, 몸을 땅에서 석 자 높이로 올렸을 때 땅에 꼬꾸라지면서 떨어졌고 그와 동시에 총소리가 울렸답니다. 그놈의 한쪽 눈이 터져버렸죠. 아버지와 어머니는 왼손에 그을린 지팡이를 짚고, 오른손에는 파란 연기가 나는 일본제 모제르 총을 든, 바싹 마르고 허리는 구부정하며 백발이 성성한 나의 할아버지를 보았답니다. ― 본문중에서
나중에 둘째 할머니는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어린 고모의 비참한 소리를 들었다. 그 여인은 힘겹게 눈을 뜨고 꿈결의 환상 같은 정경을 바라보았다. 그 젊고 아름답게 생긴 병사가 온돌 위에 서서, 칼자루에다 어린 고모를 꿰고 두어 번 흔들다가 힘껏 던져버렸다. 어린 고모는 날개가 펼쳐진 큰 새처럼 천천히 온돌 아래로 날아갔다. 그 아이의 붉은 솜옷은 햇살 아래 펼쳐지면서 길어졌고, 가볍고 매끄러운 비단처럼 방 안에서 파도를 이루었다. 어린 고모는 날아가던 도중에 팔이 축 처졌고, 머리는 고슴도치처럼 곤두세워졌다. 총을 들고 있는 젊은 일본 병사의 눈에 파란색의 눈물이 어려 있었다. 둘째 할머니는 모든 힘을 다 그러모아서 고함을 질렀다. 그 여인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은 이미 죽어 있어서, 여인의 눈앞에 노란빛이 반짝이더니 연달아 녹색 광채가 나타났고, 최후에는 칠흑 같은 조수가 그녀를 삼켜버렸다. ―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