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의 신화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비어 있는 방』수록
10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단편소설집
이 방에, 이 버스에, 이 까페에, 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자들은 어떻게 될까?
과연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날카롭다. 흥미진진하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도서출판 글여울이 2021년에 출간한 장편 『문명, 그 화려한 역설』, 『도피와 회귀』에 이어 세 번째로 내놓는 소설이다. 이 단편집에는 총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현대인의 일그러지고 왜곡된 자화상, 기형화되고 병들어 가는 시대상을 예리하고 파헤친다. 다만 이 소설들 중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도 있고, 실존주의적 경향도 있는 작품도 있다. 특히 몇 편은 위버-섹스얼픽션과 안티-펄프픽션, 디-내러티브픽션, 넌-헤비너시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도 있다.
본 작품집에 첫 번째로 소개된 『비어 있는 방』은 작가의 등단작이다. 한국 현대문학사에는 시대를 조명하는 ‘방’들이 있다. 1936년 이상의 『날개』, 1971년 최인호의 『타인의 방』, 1994년 신경숙의 『외딴 방』이다.
이 시대적 방 시리즈는 1998년 최인의 『비어 있는 방』으로 이어진다. 이 ‘비어 있는 방’의 문을 두드리면 1998년 밀레니엄의 살풍경하고 차가운 ‘방’이 펼쳐진다. 그 방에는 마치 먼지처럼 존재하면서도 존재 하지 않는 것 같은 한 인간이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비록 시대적 배경은 과거에 멈춰 있을 지라도 작품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은 현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본 작품집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극한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 극단의 상황 속에서 비인간적이 되기도 하고, 소시오패스적 경향도 보이며, 자아 파괴의 속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그 기저에 휴머니즘, 즉 인간회복에 대한 갈망을 품고 있다는 공통성을 가진다. 그 외 몇몇 주인공들은 비현실적 폭력성과 파괴성, 비정상적 성적 욕망과 인간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작가는 파격적으로 표현해 보인다.
도서출판 글여울이 2021년에 출간한 장편 『문명, 그 화려한 역설』, 『도피와 회귀』에 이어 세 번째로 내놓는 소설이다. 이 단편집에는 총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현대인의 일그러지고 왜곡된 자화상, 기형화되고 병들어 가는 시대상을 예리하고 파헤친다. 다만 이 소설들 중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도 있고, 실존주의적 경향도 있는 작품도 있다. 특히 몇 편은 위버-섹스얼픽션과 안티-펄프픽션, 디-내러티브픽션, 넌-헤비너시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도 있다.
본 작품집에 첫 번째로 소개된 『비어 있는 방』은 작가의 등단작이다. 한국 현대문학사에는 시대를 조명하는 ‘방’들이 있다. 1936년 이상의 『날개』, 1971년 최인호의 『타인의 방』, 1994년 신경숙의 『외딴 방』이다.
이 시대적 방 시리즈는 1998년 최인의 『비어 있는 방』으로 이어진다. 이 ‘비어 있는 방’의 문을 두드리면 1998년 밀레니엄의 살풍경하고 차가운 ‘방’이 펼쳐진다. 그 방에는 마치 먼지처럼 존재하면서도 존재 하지 않는 것 같은 한 인간이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비록 시대적 배경은 과거에 멈춰 있을 지라도 작품에서 느껴지는 쓸쓸함은 현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날카롭다. 흥미진진하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과연 이 방에, 이 버스에, 이 까페에, 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자들은 어떻게 될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비어 있는 방」
P9
오층이나 육층 높이에서 인간의 모습을 내려다보자. 그들은 보도 위를 당당하게 걸어다니지만 하나같이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흉측하게 불거진 엉덩이며 가슴, 연신 앞뒤로 뻗치는 팔과 다리, 모든 게 꼴불견이다. 그들의 위대한 눈과 코, 입은 어디로 갔는가. 인간들은 모두 바닥에 납작하게 눌려서 게처럼 땅 위를 기어 다니고 있다.
그는 들여다보던 책을 덮고 소파에서 일어선다. 해는 아직도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 걸려 있다. 물탑 뒤로 몸을 숨긴 채 쏟아내는 햇빛은 투명하다 못해 예리하다. 그 빛을 타고 물탑의 그림자가 옆 건물 벽으로 날아가 박힌다. 하늘로 뾰족하게 솟은 물탑은 톱날의 날카로운 음영으로 벽을 자른다. 엷은 미색의 아파트 벽은 잘리기 직전의 마디카나무처럼 위태롭다. 벽 밑으로 고압전선이 늘어져 있고 전선에 매달린 애자가 보인다. 붉게 물든 해는 아주 조금씩 아파트 물탑 뒤로 숨어들어 간다. 그는 창가에 서서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해의 움직임과 물탑의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변증법적함수성」
P163
내 예상과 달리 사내는 계속 따라올 뿐 어떤 말도 건네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걷다가 늦추기도 하고 천천히 움직이다가 급하게 걷기도 했다. 나의 그러한 의도를 비웃는 것처럼 사내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쫓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거의 뛰다시피 발걸음을 놀렸다. 나의 그러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커다란 발소리를 내며 묵묵히 따라올 뿐이었다.
p183
선생은 아직까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군. 내가 이 집에 찾아온 이유를 말이오. 아무튼 좋소. 선생이 어떻게 나오든 나는 관계의 끈을 풀어 버릴 것이니까 말이오. 그래도 선생께선 이 사실만은 알아 두어야 할 거요. 권리와 자유의 확보는 언제나 상대적이라는 걸. 현재 선생에겐 의무라는 수동적 자기 억제만이 필요하오. 선생이 가지고 있던 사실적 권리는 내가 들어선 순간부터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들 그리고」
p225
무더운 여름날 오후.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로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바쁜 것처럼 초초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안을 기웃거렸다. 사람들의 불안한 모습을 대변하듯 기사가 엘리베이터를 수리하는 중이었다. 수리는 어제쯤 끝날 것 같습니까? 기사에게 넌지시 말을 붙인 건 청바지 차림의 20대 청년이었다. 좀 기다려 보시오. 잠시 후면 정상적으로 작동될 것 같으니까. 기사를 대신해서 대답한 사람은 50대 초반의 대머리였다. 대머리는 뚱뚱하고 비대한 체구답게 연신 땀을 훔쳐냈다.
“이거 시간이 없는데 미치겠구만.”
p234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추락 중입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게 아니에요.”
안경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동시에 계기판을 쳐다보았다. 계기판의 숫자는 아직도 빠른 속도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빠르게 떨어져서 아무도 숫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다시 공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P250
“나도 밖으로 나가겠소.”
“그럼 영감님은…?”
넥타이가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을 지목했다. 노인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더니 쇠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여기에 남겠소. 여기에 있으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난 여기에 남겠소. 밖으로 나가 본들 무슨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정말 안 나가시겠습니까? 내 걱정은 말고 댁들이나 나가시오. 노인은 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한 노인의 태도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모습이었다. 노인의 태도가 의연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잠시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한 듯 앞다투어 위로 올라갔다.
제목 돌고래의 신화
지은이 최인
분류 단편소설집
발행처 도서출판 글여울
발행일 2022년 4월 19일
정가 14,000원